300억 투입 ‘하얼빈’ 첫날 38만 관람
돌 들고 싸우던 독립군 사실적 묘사
호쾌한 액션 등 흥행공식 안 따라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다룬 작품이다. 우민호 감독은 “마음을 다잡고 목적을 향해 가는 이들에게서 숭고미를 느끼기를 바랐다”고 했다. CJ ENM 제공“카레아우라! 카레아우라! 카레아우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안중근(현빈)은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를 저격한 뒤 ‘대한독립 만세’를 뜻하는 러시아어를 소리친다. 거사 성공에 대해 환호하거나 함께 만세를 외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거사를 지켜본 러시아인들은 건조하게 안중근을 쳐다볼 뿐 가타부타 말이 없다. 카메라 역시 군인들에게 끌려나가는 안중근을 담담히 비출 뿐이다.
24일 개봉한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을 다룬 작품이다. 1908년 안중근이 이끌었던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부터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암살까지 약 1년을 담았다. 영화계 대목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한 덕에 첫날 약 38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번 신작의 특징은 흥행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슴을 떨리게 하는 호쾌한 액션도, 가슴을 뜨끈하게 달구는 남자들의 끈끈한 우정도 없다. 신아산 전투에선 돌과 칼을 들고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잔인한 장면을 비추며 독립군의 투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조명한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연출한 것. 우민호 감독은 19일 언론 인터뷰에서 “안 의사가 슈퍼맨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와 동떨어진 영웅처럼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제작비 300억 원이 투입된 덕에 화려한 영상도 볼만하다. 안중근이 단지동맹 동지들과 함께 폭약을 구하기 위해 사막을 헤쳐나가는 장면은 생생함을 더한다. 안중근이 꽁꽁 언 두만강에서 방황하는 장면에서 그가 겪는 추위와 고민이 물씬 느껴진다. 이 장면은 몽골 홉스골 호수에서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 촬영됐다. 배우 현빈은 “체력보다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영화”라며 “안중근이 처형당하는 마지막 촬영을 하고 나선 오열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는 부족하다. 안중근의 내면에 초점을 맞췄지만, 동지를 잃고 방황하는 모습 외에 공감할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 독립군 속에 밀정이 있다는 설정이 긴장감을 자아낼 수 있는 치밀한 복선이나 구성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각각 1270만 명, 750만 명 관객을 동원한 ‘암살’(2015년) ‘밀정’(2016년) 등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 비교하면 상업 영화로서의 단점은 두드러진다.
영화계에선 26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와의 경쟁에서 신작이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선 리더십을 다룬 작품인 만큼 현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 흥행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올 10월부터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 특별전을 여는 등 젊은 세대에 ‘안중근 바람’이 불고 있다는 점에서도 향방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