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면접교섭>▲ 영화 <면접교섭>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이전 세대만 해도 이혼은 당사자에게 '흠' 자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들 다 차이 감수하며 가정을 깨지 않기 위해 서로 한발 양보해가며 희생하는 게 당연한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던 사회 분위기가 그리 멀지 않다. 이혼하게 되면 특히 여성의 경우 죄인 취급을 받으며 터부시되는 게 흔했다. 당대 인기 배우라도 이혼녀는 드라마에 출연하기 어렵던 게 불과 반세기도 안 된 일이다.
요즘엔 '돌싱'이란 신조어가 널리 통용될 만큼 과거에 비해선 일상다반사가 되어가지만, 또 다른 문제가 대두된다. 남녀가 성격 차이 등으로 결별하는 것과는 별개로 결혼생활을 통해 탄생한 2세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다. 과거엔 결손과정이라 불렸고, 한부모 가정에 대한 공식적인 차별은 찾아보기 힘들다 해도, 실질적인 생활의 곤란함, 은연중에 여전한 사회적 편견에 노출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혼을 결정하게 되면 뒤따르는 복잡한 법과 제도적 의무가 과연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되는지 지속적인 관리도 허점을 드러내는 중이다.
대개 이혼 후 자녀 문제에서 가장 표면적인 쟁점은 양육비 지급 불이행 문제다. 정서적 문제로 어머니와 사는 자녀에 대해 경제력 있는 아버지 측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게 오르내리는 중이다. 과거 남성 가부장제 폐단 탓에, 대개 사회적 인식은 양육비 미지급 일방에 대해 비판적이다.
드러나지 않는 정반대 사례가 있기도 하다. 자녀와 동거하지 않는 부모 일방의 면접교섭권 문제다. 영화 <면접교섭>은 그 사각지대 문제를 사회적으로 환기하려는 첫 번째 주자에 속하는 기록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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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비 지급 불이행 이슈에 가려진 쟁점, '면접교섭권' ▲ 영화 <면접교섭>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40대 중년 남자가 KTX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인천에서 포항까지 아무리 고속열차라지만 제법 먼 길을 이동하는 길을 그는 매달 두 번 주말마다 꼬박 감행한다. 직장에 다니는 처지로선 여유시간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오르는 여정이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게 된 것일까?
김재훈씨는 이혼남이다. 그는 생모와 포항 인근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딸과 면접교섭을 하기 위해 불평할 새도 없이 격주로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생모의 이런저런 핑계로 법적으로 확보된 면접교섭 시간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제한된 면회만, 그것도 수시로 어그러지기 일쑤다. 8시간 보장된 면회는 교통편이 없다는 이유로 4시간도 이어지지 못한다. 왕복 열차 이동시간이 훨씬 더 긴 셈이다.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는 그의 인천 집엔 여전히 딸의 방이 마련돼 있고 가구와 기타 등속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다. 아이만 오면 될 정도다. 동네 문방구를 지날 때마다 딸이 좋아할 학용품과 장난감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다. 한 달에 한두 번도 겨우 만나는 관계이지만 딸과 사이도 좋아 보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딸을 사랑하는 게 티가 나는데 왜 김재훈씨는 딸의 양육권을 이혼한 전처에게 넘긴 걸까? 듣기만 해도 먹먹한 사연이 당사자의 입을 빌려 펼쳐지기 시작한다. 경우는 제법 다르지만, 얼마 전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더 글로리> 속 악역 중 하나가 불륜으로 낳은 자신의 친자를 빼앗아오기 위해 고심하던 사연과 겹친 구석이 많다. 법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구석 탓에 미치고 펄쩍 뛸 모순에 처한 형국이다.
이번엔 50대 건장한 중년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서울에서 청주로 역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한 쇼핑몰에서 그는 반대편을 보고 덩치에 맞지 않게 애정표현을 과할 정도로 펼치기 시작한다. 부끄러움을 감수하며 '사랑해!' 외치거나 손으로 하트를 표시하는 모습이 어색하지만, 너무나 절박해 보이는 표정과 음성을 보고 있자면 대체 무슨 사연일까 궁금해질 따름이다.
그런데 더 괴이쩍은 건 그런 애정 표시에 반응하는 상대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은 그런 남자를 외면하며 얼굴 봤으니 얼른 가라며 곧바로 등을 돌린다. 남자가 아무리 다급하게 뒤를 따라도 끝내 외면하기만 한다. 엘리베이터를 급히 타고 문을 닫자, 축 처진 그는 허무한 표정을 짓는다.
배문상씨는 앞선 김재훈씨와는 또 다른 난항에 빠진 상태다. 전처와 함께 사는 아들은 한사코 아버지와 면회를 거부하며 대면하자마자 발걸음을 돌린다. 자조적으로 10초 면접을 2주마다 반복한다며 그는 인터뷰 중간에도 감정이 북받쳐 자주 눈물을 흘리곤 한다.
김재훈씨가 면접교섭에 불성실한 전처 때문에 속앓이를 겪는다면, 배문상씨는 생모의 '부모 따돌리기' 탓에 자신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주입받은 아이가 본인을 표면적으로 거부하는 형태다. 그나마 비협조적이라도 최소한의 소통은 가능한 전자에 비해, 만날 때마다 더 속이 상하는 셈이다.
두 사람의 사례는 상이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양육비 지급 등 법정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 이혼의 귀책 사유가 (그들의 증언을 신용한다면) 본인들의 탓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법적으로 보장된 면접교섭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현행 제도의 치명적 허점, '부모 따돌리기'의 희생양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될 테다.
법과 현실의 괴리가 가져온 부작용 ▲ 영화 <면접교섭>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법 제도는 사회적 현상을 발 빠르게 수용하는 게 관건이다. 그러나 평범한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법은 변화하는 현실을 너무 늦지 않게 쫓아가기만 해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시민의 기대엔 턱없이 미치지 못한다. 그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입법의 역할일 것이다.
한국 사회는 항상 압축성장의 후유증에 노출돼 있기에, 유독 그런 부작용에 취약한 편이다. 영화 속에서 자녀와 생이별한 두 아빠도 그런 갭 차이의 피해자인 셈이다.
남성우위 가부장제에 대해 반성하는 인식과 과거 사회적 경향 탓에, 이혼한 부모 일방 중 양육자와 함께 사는 자녀에 대한 다른 일방의 양육권을 위시한 부양의무 책임은 근래 여러 차례 사회적 환기되는 중이다. 물론 상황 빈도만 봐서는 양육비 지급 의무 위반이 훨씬 더 잦고 파장도 크지만, 그 반대편에 가려진 면접교섭권 위배 문제도 절대 가볍지 않다는 것을 거의 최초로 공개하는 작업이 본 작품일 테다.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혼한 부모가 자녀와 시간을 내어 함께 만나거나 일정 기간 쌍방을 오가며 생활하는 묘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그 사회라고 문제가 안 생길 리 없지만, 적어도 그런 가족 관계가 낯설지 않고 이혼한 뒤에도 자녀와의 관계는 양쪽 모두 이어갈 수 있는 정도의 기반은 마련되는 셈이다.
반면에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이혼하게 되면 자녀가 부모 중 일방을 선택해야 하거나, 양육하지 않는 (즉 함께 살지 않는) 일방과는 거의 단절된 일상을 사는 게 지배적인 상황이 된다.
물론 한국의 현행 법제도 역시 이혼 부부의 후속 조치에서 2세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존중하는 방향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미성년 자녀는 동거하는 부모 중 일방에게 강하게 종속되게 마련이다. 이혼 후 친구처럼 지내는 서구사회와 비교해 원수지간은 아닐지언정, 결별 후에는 단절되는 게 다수다. 한국 사회에선 원칙적으론 최우선 사항인 자녀의 권리가 실질적으로 잘 보장되지 못한다.
결국 경제적 보장의 최소치인 양육비 지급, 정서적 보장의 기본이라 할 면접교섭권 보장 모두 제대로 지켜져야 하지만, 정작 둘 다 미흡한 꼴이다. 게다가 감정의 앙금이 남은 동거 부모 일방은 상대에 대한 응어리를 자녀에게 푸는 경우가 적지 않아 정서적 학대 우려가 상존한다.
이혼가정 자녀들의 권리 찾기 여정 ▲ 영화 <면접교섭> 스틸 이미지ⓒ 필름다빈
영화는 두 명의 자녀와 떨어져 사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특정 성 역할을 옹호하거나 대변하지는 않는다. 그저 표본 사례가 양육비 지급 문제의 대척점에 선 면접교섭권 피해자이다 보니 그렇게 섭외된 것뿐이다.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사례 또한 근래 독립 다큐멘터리에서 서서히 대두하는 의제이지만, 본 작품은 좀 더 희귀한 상황에 주목했을 뿐이다. 단지 개인의 억울한 사연 소개를 뛰어넘어 해당 사안의 심각성을 공유하기 위한 해설이 풍성하게 들어찬다.
양육하지 않는 부모라 해서 애정이 덜하거나 무관심하다는 편견을 넘어 이런 사례도 있다는 예시로 김재훈씨 이야기가 활용된다면, 본인의 억울함을 넘어 사회적 의제화를 위해 다양한 대외활동에 참여하는 배문상씨 사례는 해당 사안이 그저 운 나쁜 특수한 개인의 경우를 초월해 급격히 늘어가는 문제임을 설파한다. 이런 유형의 사회적 피해가 제도의 허점을 비집고 확장되는 게 당사자에게 어떤 고통을 안기는지, 그리고 제도 정비가 왜 시급한지 두 사람이 경유하는 변호사나 상담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설되는 효과가 이어진다.
두 아빠 사연이 신파에 치우친다는 의혹을 품었다면, 전문가 해설은 물론 양방 중 한쪽의 입장도 어렵게 청취해 옮긴 인터뷰, 그리고 후반부에 실제 이혼가정 자녀 당사자들이 성인이 되기까지 겪었던 생생한 증언이 보완해준다. 덕분에 이혼한 일방의 하소연을 넘어 결국 이 문제가 자녀들의 정서안정과 행복추구권에 침해됨을 깨닫게 해준다. 이를 통해 급격하게 확대되는 해당 사안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건 물론, 객관적인 진단 기능도 놓치지 않는다. 뉴스 심층취재 르포에 가까운 전형적인 구성이지만, 새로운 이슈를 알리는 데는 왕도적 형식이 적합한 입증 격이다.
형식적 유려함보다는 주제 전달에 집중하는 평면적 전개가 못내 아쉽더라도, 메시지 공유에는 충분한 수준의 완성도를 확보한 작업이라는 데 별로 이견은 없을 작업이다.
놀라운 건 <면접교섭>을 제작한 이들이 그야말로 '밀레니엄 세대', 이제 대학교 졸업반이 영화의 주축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완전히 새로운 시야로 관찰했기에 기성세대가 놓치는 미세한 변화의 첨단을 포착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들이 피부로 느끼는 가족 형태의 숨 가쁜 변화가 이제 사회적 의제 환기의 선발대로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다.
▲ 영화 <면접교섭> 포스터 이미지ⓒ 필름다빈
[작품정보]면접교섭
Visitation Rights
2024|한국|다큐멘터리
2024.12.25. 개봉|82분|전체관람가
감독 이주아
출연 김재훈, 배문상
제작 감성스토리, 히스토리메이커
배급 필름다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