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이터널 선샤인>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조엘(짐 캐리)은 오랜 연인 관계의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찾아간다. 사과를 하러 간 것.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그러나 조엘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느 남자와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다. 너무 황당해 돌아선 그는 친구 부부의 집으로 가 하소연한다. 그런데 남편이 보여주길 '라쿠나'라는 회사에서 편지가 왔는데 클레멘타인이 조엘에 대한 기억을 지웠다는 것이다.
황당함을 넘어 분노로 치달은 조엘은 라쿠나를 찾아 자신도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을 모조리 지워 달라고 한다. 홧김에 한 선택인 듯한데 아마도 클레멘타인도 그러했을 것이다. 하여 라쿠나의 기술자 스탠, 보조 패트릭, 접수원 메리가 조엘의 집으로 가 그를 침대에 눕힌 채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조엘은 밤새도록 클레멘타인에 대한 기억이 하나둘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자각할 때도 있고 자각하지 못할 때도 있는데 결코 좋은 느낌은 아니다.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고 있는 이와의 기억을 소멸시켜 버리는 경험이라니. 어느 순간이 지난 후 조엘은 원장에게 간청하고 있다. 더 이상은 지우지 말아 달라고, 이 기억만은 남겨달라고. 급기야 그는 기억 속 클레멘타인과 어디론가 도망치려 하는데.
겨울 시즌 로맨스 영화 3대장 ▲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 노바미디어
자타공인 21세기 최고의 로맨스 영화라 일컬어 지는 <이터널 선샤인>이 북미 현지 개봉 2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다시 개봉했다. 국내에서 정식 극장 개봉 4번째를 맞은 것이다.
<이터널 선샤인>은 결코 가볍게 볼 만한 작품이 아니다. 환상적이고 독특한 영상미로 명성 높은 프랑스의 미셸 공드리 감독과 영리한 상상력으로 유명한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이 합작해 만든 작품이다. 거기에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이 투톱으로, 커스트 던스크와 마크 러팔로 등이 뒤를 받친다.
주지했듯 이 영화는 오래된 연인이 크게 다툰 후 홧김에 서로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삭제해 버리는 시술을 받는다는 게 주요 이야기 라인이다. 흔하디 흔한 로맨스 이야기라고 해도 무방한데, 주요 설정이 기가 막히고 조화를 이룬다. <이터널 선샤인>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사랑'과 '기억'과 '존재'에 대한 진지한 고찰까지 나아간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 사랑에 빠지니 ▲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 노바미디어
지나간 일을 기억하는 건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 양과 질이 완연히 다를 텐데 그래도 특정 순간이 기억나는 건 그곳에 누군가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겠다. 그와의 관계성에서 비롯된 감정이, 행복하든 격양되든 슬프든 기쁘든 정점에 이른 순간이 기억나기 마련이다.
극 중에서 조엘이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지워 가는 과정이 굉장히 독특하게 그려진다. 기억의 순간이 사라지는 걸 그 순간의 세상이 무너지고 사라지게 그려냈다. 단순히 기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하나의 기억을 이루는 하나의 세상, 여러 기억을 이루는 여러 세상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특정인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린 후 그와 다시 만났을 때 사랑에 빠지지 않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100이면 100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그와의 기억만 지웠을 뿐 나라는 존재와 그라는 존재는 한 점 바뀜 없이 그대로이니 말이다.
사랑과 기억, 그리고 존재에 관한 이야기 ▲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한 장면.ⓒ 노바미디어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사랑과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다지만 그 무엇보다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 있지 않을까.
이런 영화, 또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영상의 힘과 각본의 힘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한편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