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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얼빈..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이등박문을 총으로 척결하였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2-19
하얼빈

의사(義士) 안중근(1879~1910)의 거사(擧事)를 다룬 작품이 또 한 편 만들어졌다. 오래 전 충무로에서는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1959)과 <의사 안중근>(1972>을 만들었고, 서세원도 <도마 안중근>(2004)을 직접 감독했었다. 하다못해 유튜브에서는 북한에서 만든 안중근영화를 찾아볼 수 있다. MZ세대에게는 정성화의 장엄한 뮤지컬 <영웅>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내부자들>과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이 지금 이 시점에 안중근 의사를 다시 불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시점에 구국, 항일, 애국을 내세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하얼빈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FN M1900’ 자동권총으로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를 쏘아죽인 곳이다. 우민호 감독과 함께, 그리고 홍경표의 카메라와 함께 그날의 현장으로 떠나보자.
영화는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동토를 하염없이 걷고 있는 한 남자를 보여준다. 그는 독립군 안중근이다. 그는 한 해 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와 맞닿은 함경북도 경흥, 신아산 일대에서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치명적인 판단으로 독립군에게 큰 데미지를 안겼다. 의군 우익장이었던 안중근은 일본군 포로를 ‘만국공법에 따라’ 그냥 풀어준 것이다. 독립군 대부분은 반대한다. 그 때 풀려난 일본군 모리는 이제 독립군을 몰살하고, 안중근의 행적을 추적한다. 하얼빈까지. 이 영화의 큰 플롯은 이에 따른다.

그동안 보아온 안중근 이야기는 일제의 침략과정과 조선반도에서의 만행, 그에 덧붙여 조선-대한제국 권력가의 어이없는 매국노질에 초점을 맞춰 힘없는 민초들의 울분을 극대화한다. 황해도에서 자란 안중근의 초반 인생은 종교인으로서, 양심가로서, 굳세게 살아가는 모습이고, 후반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하얼빈을 무대로 항일의지를 선양하는데 주력한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 조마리아의 신심과 모성애가 빛내고, 거사 이후 뤼순 법정에서 이뤄지는 장대한 ‘동양평화론’ 설파가 핵심이었다. 물론, 하얼빈에서의 총소리와 “코레아 우라!” 고함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우민호 감독은 잘 알려진 안중근의 개인적 가족사를 생략한다. 영화 <하얼빈>에서는 그의 종교적 배경이나, 청년기 이전의 단련과정을 건너뛴다. 오직 경흥전투의 과오를 통해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경흥전투는 지극히 영화적 묘사이다. 마치 넷플릭스의 <더 킹:헨리 5세>의 한 장면처럼 진흙탕에서의 육박전과 살육, 그에 수반하는 보복전이 우민호가 바라보는 역사콘텐츠의 재구성 방식이다. 이 장면을 ‘굳이’ 재현한 것은 끝에 가서야 의문이 풀린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거나, 누구에게나 한 번의 기회가 더 주어진다는 것. 그렇지 않다면 안중근의 종교적 신념이나 철학적 사고의 편린일 것이다.

영화 <하얼빈>은 관객이 기대함직한 독립군의 영웅적인 면모나 안중근의 동양평화에 대한 고민, 이토 히로부미 암살의 역사적 함의를 따로 들려주지 않는다. 감독은 단조로울 수 있는 안중근의 길에 폭탄을 심는다. 독립군 내에 있을지 모르는 밀정으로 이야기의 긴장감을 높인다. 위험한 시기, 위험한 장소에서, 서로를 의지해야하는 사람들이 펼치는 불신과 배신의 이야기는 순수한 항일투쟁노선이 스파이 찾기가 된다. 관객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들 중 누군가가 배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누굴까. 감독은 그런 설정에 힘을 쏟다보니 실제 하얼빈 역에서의 거사와 이어지는 세기의 재판, 교수형 모습은 서둘러 끝내버린다.

하얼빈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에 대해 잘 아는 한국 관객들을 위한 작품이다. 그가 왜 총을 들고, 왜 이등박문을 쏘았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감독은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다. 뮤지컬에서처럼 일본의 죄악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단지 북풍한설의 동토와 이국땅에서의 불신, 나라 없는 처량한 독립군의 단 하나의 사명을 지켜보는 것뿐이다. 그런 장대한 이야기를 다루기에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

안중근을 다룬 김훈의 소설 <하얼빈> 마지막 장을 보면 소설에 다 못 담은 인물의 이야기를 간략히 들려준다. 그의 남은 가족이 어떻게 되었고, 그의 형제가 어떻게 되었는지. 최악의 시기에 최선의 인물로 기억되기는 정말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 기억해야할 사람들이 있다. 영화에서 한 등장인물이 그런다. “(우리의 거사는) 개죽음으로 끝날 거야. 아무도 우릴 기억하지 못할 거야.”라고. 실제, 매국노와 그의 자손들은 대를 이어 잘 먹고 잘 살지만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집안이 망한다잖은가. 일제강점기 엄혹한 시기에 독립운동을 했든, 좌익운동을 했든, 아니면 이중스파이가 되었든 많은 순수애국자들이 사료의 부족, 기록의 부재, 증인의 부재, 그리고 후손들의 망각으로 부당한 역사적 대우를 받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 조금은 모자란 작품일지라도 역사 콘텐츠를 봐야하는 이유이다.

안중근이 이국 땅에서 이슬이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서른이었다.

▶하얼빈 (영제 : HARBIN) ▶각본/감독: 우민호 ▶출연 :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릴리 프랭키, 이동욱 ▶특별출연:정우성 ▶제공/배급: CJ ENM ▶제작: (주)하이브미디어코프 ▶공동제작: 젬스톤픽처스 ▶개봉: 2024년12월24일/15세이상관람가/113분

[사진=CJ ENM]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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