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CJ ENM[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유연해지고 여유를 가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깊어졌다. 단순히 '한류 스타'로 멈출 청춘 스타가 아니다. 배우이자 남편, 아버지로서 흔들림 없이 두 발을 땅에 딛고 선 현빈(42)이 어지러운 세상에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액션 영화 '하얼빈'(우민호 감독, 하이브미디어코프 제작)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 그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하얼빈'의 출연 계기부터 작품을 향한 열정을 고백했다.
'하얼빈'은 1909년,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이들과 이를 쫓는 자들 사이의 숨 막히는 추적과 의심을 그린 작품이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안중근을 중심에 둔 '하얼빈'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서늘하고 위태로웠던 1909년, 그해 10월 26일 벌어진 하얼빈 의거와 의거가 발생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과정을 스크린에 담았다. 안중근이라는 인물에 대한 거대한 심리 드라마이면서 동시에 그와 뜻을 함께한 동지들 사이의 진심과 신념, 고뇌와 의심을 둘러싼 갈등을 묵직하게 다뤘다.
지난 2023년 개봉한 영화 '교섭'(임순례 감독) 이후 1년 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한 현빈의 파격 변신이 단연 눈길을 끈다. 조국을 빼앗긴 시대를 살아가며 목숨을 건 작전에 나서야 하는 안중근 역할을 맡은 현빈은 안중근의 외로움과 결단력을 동시에 보여주는 섬세한 감정 연기뿐 아니라, 하얼빈으로 향하며 펼쳐지는 다양한 액션까지 소화하며 안중근 그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현빈은 "이 작품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부담이 커 출연을 여러번 고사했다. 우민호 감독이 계속 출연을 제안했고 내게 캐스팅을 제안 할 때마다 조금씩 시나리오를 고쳐 나를 설득했다. 한 번도 같은 시나리오를 준 적이 없다. 우 감독의 스타일이 현장에서도 계속 고친다. 무언가 좋은 것이 없을지 늘 고민하는 감독이다. 디테일한 하나를 찾아 계속 쌓다 보면 큰 것을 바꿀 수 있으니까 그 작업을 계속 이어가더라. 너무 힘든 작품이라고 여겼지만 나도 모르게 시나리오를 계속 보게 된 것 같다. 시나리오와 함께 안중근 자료를 동시에 보면서 작품을 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궁금한 지점이 생겼다. 우 감독의 열정과 에너지, 나를 향한 시그널이 복합적으로 맞았고 그래서 끝내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 안중근 장군을 연기한다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필모그래피 중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작품으로 '하얼빈'을 꼽은 현빈은 "지금까지 한 작품 중 가장 힘들었다. 촬영이 끝나고도 주변의 많은 분이 '너무 힘들었겠다'는 말을 해주더라. 솔직히 신체적으로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정신이 더 힘들어서 그런지 몸이 힘든 부분은 조금 잊고 있었다. 안중근 장군에 대한 압박감과 무게감도 그렇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많이 외롭고 힘든 과정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 초점을 맞춘 부분은 이 분이 독립 투사이지만 '과연 거사를 앞두고 인간으로서 두려움은 없었을까?'였다. 동지들과 균열이 발생했을 때 본인의 선택에 후회가 단 한 번도 없었을지, 또 미안함은 없었을지 이런 고민 속에서 안중근 장군의 연기를 시작한 것 같다. 영화를 보면 안중근이 안가 구석 어두운 곳에 쪼그려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세트장 공간 안에 들어갔을 때 안중근의 감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아이디어를 낸 장면이다. 안중근 장군에 대한 부담감은 끝날 때까지 못 떨쳐냈다. 지금도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는 "촬영하면서도 안중근 장군에 대해 남아있는 사료를 봤고, 그분이 결심을 하기까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계속 상상하려 했다. 우 감독도 '하얼빈'에서 안중근 장군의 그런 모습을 담고 싶어했다. 생각하고 상상하며 만들어야 할 작업이었다. 지금도 안중근 장군의 마음을 잘 못 찾은 것 같다. 조금이라도 그 분의 생각에 가까이 가고 싶어 최대한 노력을 했지만 지금도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감히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범주의 인물인 것 같다. 예전에 최민식 선배가 '명량'(2014, 김한민 감독)을 촬영할 당시 '제발 꿈에 한번 나와서 힌트라도 주길 바랐다'고 했는데 나도 '하얼빈'을 촬영하면서 그런 마음이 컸다. 그런데 꿈에 절대 안 오시더라"고 웃었다.
현빈은 대표적인 '한류 스타'다. 특히 2019년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당시 넷플릭스 플랫폼을 통해 일본에서도 공개되면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많은 일본 팬을 거느리고 있는 현빈에게 당연히 '하얼빈'은 큰 부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빈은 "오히려 나보다 주변에서 더 우려가 많았다. 이 영화는 우리의 아픈 역사이지 않나? 잊으면 안 되는 기록이다. 나를 우리나라 배우로 자리잡게 만들어 준 나라이지 않나.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한류 스타'로서 고민은 단 1%도 없었다"며 "실제로 과거 일본에서 안중근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며 내게 안중근 역할로 출연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고 굳은 의지를 밝혔다.
사진=tvN쉽지 않았던 '하얼빈'과 안중근이었던 현빈은 지독한 부담감을 잊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준 조력자로 아내 손예진을 꼽았다. 앞서 현빈은 지난 2018년 개봉한 영화 '협상'(이종석 감독)으로 인연을 맺은 손예진과 동반 미국 여행 목격담이 공개되면서 열애설이 불거졌다. 이후 '사랑의 불시착'으로 다시 한 번 재회한 두 사람은 드라마가 종영한 이후인 2021년 1월 열애를 공식 인정했다. 현실이 된 로맨스에 국내는 물론 전 세계 팬들이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고 공개 열애 1년 2개월여 만인 2022년 3월 결혼으로 결실을 보며 '세기의 커플'로 등극했다. 그해 11월 건강한 아들을 얻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얼빈' 촬영 직전 아들을 출산한 아내 손예진에 대해 현빈은 "나도 '하얼빈'을 촬영하면서 많이 외로웠지만 그때 상황(출산 후 혼자 아이를 돌보며 지내야 했던 상황)에서 아내도 외로웠을 것이다. 아무래도 같은 배우이기 때문에 작품의 특성상 쉽지 않은 작품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 아내가 '고생했어' '수고했어'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게 나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됐다. 본인도 출산 후 힘들었을텐데 그렇게 표현해준 것 자체가 굉장히 고마웠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그동안 현빈은 자신의 사생활 이야기를 매우 조심스러워하는 배우였다. 손예진과 공개 열애를 할 때도, 결혼, 그리고 출산까지도 사생활이 언급되는 걸 극히 부담스러워 했지만 최근 그는 달라졌다. 현빈은 " 확실히 결혼 후 아이가 생기면서 다 바뀐 것 같다. 사람은 변해야 한다. 내 사생활을 이야기 하는 게 지금도 물론 조심스럽다. 그래도 내 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표현할 수 있다면 적정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자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를 더 먹고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면서 또 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변화하고 있다는 게 보이는 것 같다"며 "아들에게 이 영화를 꼭 보여주고 싶다. 나중에 아이가 더 크면 '협상'도 보여주고 '사랑의 불시착'도 보여주려고 한다. 주로 엄마(손예진) 작품 위주로 보여줘야 할 거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이 작품을 준비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 아들이 태어났다. 나중에 아들이 이 영화를 인지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네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인물을 연기하고 만들고 있었어'라고.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영화를 잘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안중근 장군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가족을 저버리고 나라를 위해서 안중근 장군처럼 할 수 있을까 싶다. 안중근 장군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어떤 상황이 오든 내 아이를 위해, 세상을 위해 더 나은 미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역할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현빈으로서 고충도 함께 털어놨다. 현빈은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나?'라는 질문은 내게 정말 어렵다. 지금은 평범한 아빠다. 다른 건 없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다.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지 아직 모르겠다. 때로는 어느 순간 내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엄하게 하려고 했던 부분도 있다. 그러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기도 하다. 아직도 방향이 정리 안 된 아빠다. 끊임 없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초보 아빠라 (하나씩 배우면서) 찾아가야 할 것 같다"고 웃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이후 탄핵 정국까지, 영화 개봉의 적기는 아니다.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현빈은 현빈다운 소신으로 부딪쳤다. 그는 "의도치 않게 시국이 어지러울 때 영화가 개봉하게 됐는데 관객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다"며 "영화 속 안중근 장군의 내레이션이 많은 메시지를 전했는데 실제로 우민호 감독이 내레이션 대사를 쓸 때 이토 히로부미나 안중근 장군의 기록에 기반해 만들었다. 사실에 기반된 내레이션이었다. 그 내레이션이 관객에게는 희망과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이 영화의 목표는 어떻게 보면 '시원한 한 방' '시원한 결과' 보다는 독립 투사들의 여정과 길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얼빈 의거를 통해 독립이 됐다기 보다는 이게 밑거름이 되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영화다. 그런 지점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레이션도 그렇고 이게 끝이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을 드러냈다.
'하얼빈'은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그리고 이동욱 등이 출연했고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는 24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