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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로 첩보극 찍은 할머니... 보이스피싱 범인 직접 잡았다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2-17
[리뷰] 영화 <델마><중년의 위기>, <순수의 시대> 등의 영화로 잘 알려진 배우 준 스큅 주연의 영화 <델마>가 한국 시장에 VOD로 공개됐다. 신기술 중심의 사회로부터 소외된 93세 노인의 이야기를 진중하면서도 익살스럽게 그려낸 <델마>는 클리블랜드 국제영화제, 아스트라 국제영화제 등에 후보작으로 이름을 올리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본작의 어떤 요소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간단히 알아보자.

노인 문제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다

 영화 <델마> 스틸컷ⓒ 인벤션스튜디오
93세 할머니 '델마'는 24세 손자 '다니엘'과 함께 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서투르지만 컴퓨터와 이메일에 대해 배우고자 하고, 손자가 관심 있는 영화배우를 알아가고자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런 그의 삶에 보이스피싱 사건이 일어난다. 손자의 목소리를 교묘하게 합성해 낸 보이스피싱 일당에게 속아 넘어간 델마는 큰 양의 현금을 무작정 넘겨 버리고 만다.

사태가 진정되고 난 후, 순식간에 '요주의 인물'이 된다. 보호가 필요한 대상으로 여겨져 매 순간순간을 주변인들에게 감시당하며, 스스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나서도 끝없는 "그러시면 안 돼요" 소리를 들을 뿐이다.

<델마>는 직·간접적으로 노인 문제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닌 '사회적 소외'임을 분명히 한다. 주인공 델마가 보이스피싱에 넘어간 이유는 그 사태에 관해 이야기할 주변 사람이 없어서였다. 컴퓨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델마는 자신의 보청기와 핸드폰 하나만큼은 완벽히 통제한다. 자신의 세계는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노인에게, 주변인들은 그 이상의 세계를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조사를 받을 때도 델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취급받을 뿐 필요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자기 손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천명해도, 번거로움을 핑계 삼아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손자 다니엘은 범인을 찾는 대신 친구들과의 연락을 통해 삶의 재미를 찾아보라고 하지만, 이에 대한 델마의 씁쓸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내 친구들 다 죽었더라고. 나 하루에 점심 모임을 네 개씩 다녔던 사람인데."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기술을 비롯한 요소들은 언제나 변모를 거듭한다. <델마>는 '기술과 노인 세대는 맞지 않는다'라는 일차원적인 주장을 반복하는 대신, 정보의 격차로 효능감을 박탈당한 노인들이 한 명의 사람이 아닌 '주의 대상'으로 취급되는 것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담백하지만 진한 액션

<델마>의 액션 역시 주제 의식만큼이나 담백하게 다루어진다.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는 주인공이 움직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데만 해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곤 한다. 연인의 죽음이나 부모의 죽음을 과장되게 그려내고, 아직 온전히 개성을 드러내지도 못한 주인공이 그 사건에 격하게 반응하면서 공감하기 어려운 행동을 이어가는 식이다.

그러나 <델마>는 다르다. 본작의 주인공 델마가 보이스피싱범을 스스로 잡기로 결심하는 '동기 부여 장면'은 아주 짧고도 강렬하다. 신문 1면을 장식한 톰 크루즈의 사진을 보고 자신이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크루즈가 대역 없이 직접 액션 신을 소화한다고 알려 준 손자의 말에 감명을 받은 델마는 자연스럽게 집을 나서고 이동 수단을 찾아 나선다. 이 장면은 짧지만, 결코 갑작스럽지 않다. 주변의 통제 없이 주체성을 되찾고자 하는 델마의 캐릭터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델마는 노인 친구로부터 스쿠터를 빌린 다음, 30분 주기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드는 손자로부터 벗어나 1인 첩보극을 시작한다. 델마의 여정을 무모한 것으로 판단한 동료 노인들과 '스쿠터 추격전'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의 보청기를 타인의 귀에 꽂아 무전기처럼 이용하기도 한다.

델마는 이미 지나가 버린 젊음을 회상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나이듦'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델마>의 모든 액션 신은 영혼 없는 '눈요깃거리 장면'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주제 의식을 보강하는 탄탄한 장면인 셈이다.

결국 델마는 집요한 추적 끝에 보이스피싱 일당을 찾아내는데, 그들 역시 노인과 젊은이 한 명으로 이루어진 생계형 범죄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델마는 치매 증상이 심화된 것처럼 연기하며 시간을 벌다가 총으로 사기범들을 몰아세우고, 초반에 손자와 함께 연습했던 컴퓨터 다루기를 통해 도둑맞은 돈을 자신의 계좌로 다시 이채시키는 데 성공한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첩보극'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이 장면은 여느 블록버스터 못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올드보이? 대세는 '올드걸'이다

 영화 <델마> 스틸컷ⓒ 인벤션스튜디오
93세 배우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델마>는 '노인 액션 코미디'라는 신선한 장르의 개척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외로운 선구자'보다는 '유행의 선도자'에 가깝다. 최근 들어 할리우드는 중·노년에 접어든 여성 배우들을 재발견해내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마블의 2024년 드라마 <전부 애거사 짓이야>는 패티 루폰, 캐서린 한 등을 주연으로 '마녀 이야기'를 성공적으로 풀어내 대중매체의 여자 주인공은 '젊어야' 흥행한다는 불문율을 타파했고, 유명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감독 데뷔작 <엘리노어 더 그레잇>(Eleanor the Great) 역시 절친한 친구의 죽음 이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노력하는 90세 노인의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영화가 상업적인 수단이 되고 나서부터, 나이 든 여성 배우들은 항상 이중 차별의 피해자가 되어 왔다. 노년의 남배우는 '명품 연기'를 선보이는 '대선배' 대우를 받았지만, 여배우들은 직간접적으로 은퇴의 길 혹은 결혼의 길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 경향성이 변하고 있다. 나이 든 여성 배우들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독한 시어머니'나 '자상한 할머니' 역할에서 벗어나, 그 자체로 매력적이고 독립적인 주인공으로 돌아오고 있다. <델마>는 영화사적으로는 '올드보이' 대신 '올드걸'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델마>는 1시간 38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사회 문제 지적과 코미디, 그리고 개성 있는 액션 신의 창조라는 세 가지 과제를 능숙하게 포함해 낸 수작이 됐다. 동시에, 앞으로 더 많이 나오게 될 '중노년 여성 주연 영화'의 선두 주자 격으로써 포문을 성공적으로 열기도 했다.

'제대로 나이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절로 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델마>를 보고 나이듦에 관한 희망을 얻어 보는 것은 어떨까.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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