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성형’이란 꼬리표가 달린 데미 무어는 젊어지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엘리자베스 스파클 역의 적임자였다. 찬란·뉴 제공■ 영화 ‘서브스턴스’ 감독 코랄리 파르자 인터뷰
TV쇼 퇴출 위기인 ‘왕년 스타’
의문의 약물 주입하자 20대로
여성 몸 소비하는 대중에 일침
“여성의 몸, 타인 평가에 맞춰져
신체변형·피범벅 등 극단 묘사
사회 폭력 사실적 표현에 힘써”영화 ‘서브스턴스’는 더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깔아뭉갠다. 미녀 배우로 1980∼199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데미 무어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처절하게 망가진다. 그런데 영화가 겨냥하는 표적은 여성의 환상이 아니다.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하는 남성들이자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울 강렬한 이미지로 가득한 ‘서브스턴스’의 감독 코랄리 파르자와 최근 서면을 통해 만났다.
코랄리 파르자 감독 파르자 감독은 문화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영화의 주제는 여성의 몸”이라며 “여성의 몸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강력하면서 멍청한 지배를 구축했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파르자 감독은 그녀의 두 번째 장편인 ‘서브스턴스’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했고, 내년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을 노크하고 있다. 주연을 맡은 데미 무어는 오스카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다.
왕년에 스타였지만 지금은 늙어 ‘퇴물’이 된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TV쇼에서 퇴출된다는 말을 듣고, 젊음을 되돌려준다는 의문의 약물을 자신의 몸에 투입한다. 이후 그녀 안에서 탄력 있는 몸매의 20대 미녀 수(마거릿 퀄리)가 나온다. 다시 예뻐져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 했던 엘리자베스의 바람과 달리, 그녀는 ‘또 다른 나’인 수와 사투를 펼쳐야 한다. 수가 승승장구할수록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집에서 고립된다. 갈수록 그녀의 몰골은 기괴해진다.
영화가 여성의 몸을 표현하는 방식은 극단적이다. 수가 태어나는 설정부터 파격적이다. 대중에게 피 세례를 뿜는 마지막 장면은 충격과 쾌감을 동시에 안긴다. 기괴한 이미지보다 섬뜩한 건 그 지경이 되도록 화려한 조명을 욕망하는 엘리자베스·수와 이를 종용하는 외부의 시선이다.
수(마거릿 퀄리)는 엉덩이나 가슴을 드러내는 것이 젊고 아름다운 자신이 주목받는 방법이란 걸 알고 있다. 찬란·뉴 제공파르자 감독은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몸은 끊임없이 판단되고, 분석되며, 성적 대상화된다”며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맞춰야 하는 상황 자체가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불평등은 여성들에게 내면화돼 강력한 감옥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엘리자베스는 욕실에서 홀로 자신의 몸을 볼 때에도 깊게 팬 주름과 처진 가슴을 끔찍해 한다.
그는 특히 “여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곧 ‘보디 호러’”라고 단언하며 영화의 극단적 이미지는 여성이 당하는 폭력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회는 여성의 몸이 변하지 않기를, 젊고 아름다우며 섹시하고 완벽하길 바랍니다. 기대에 부응하려는 여성들은 몸의 변화에 두려움을 느끼죠. 보디 호러 장르에 쓰이는 신체 변형과 피범벅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할리우드 최고 미녀 스타에서 ‘전신 성형’으로 조롱받으며 주류에서 밀려난 현실의 데미 무어는 엘리자베스 그 자체다. 무어에 대해 파르자 감독은 “그녀가 보내준 자서전 ‘인사이드 아웃’을 읽고 그녀가 딱 맞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책엔 어린 시절 당한 성폭행, 극단적인 다이어트와 약물 중독 등 무어의 자전적 고백이 담겨 있다. “무어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도달하기 위해 남성이 지배하는 산업에서 싸웠습니다.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엘리자베스가 사회적 시선으로 내면이 망가진 인물이라면, 수는 과도한 성적 대상화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괴물이다. 파르자 감독은 “수는 외부의 시선에 소비되기 위해 항상 완벽함을 유지해야 하는 함정의 희생자”라며 “둘은 양면성을 가진 거울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유독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클로즈업이 많은 데 대해 파르자 감독은 “신체 부위를 부각하는 몽타주는 폭력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TV쇼 제작자 하비(데니스 퀘이드)가 엘리자베스와의 식사 자리에서 게걸스럽게 새우를 먹는 장면은 가장 불쾌한 순간 중 하나다. 파르자 감독은 “과장되지만 현실적인 여성혐오자로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배경은 할리우드이지만, 실제 촬영은 로스앤젤레스가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만 이뤄졌다. 파르자 감독은 “중요한 건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악몽의 세계가 스스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무의식 속 나만의 할리우드를 창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로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고, 여성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여성들은 조금이나마 힘을 얻고 해방감을 느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