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지난 11일 개봉된 영화 <대가족>은 이승기가 머리를 삭발해서 놀란 것이 아니라 양우석 감독이 휴먼드라마를 찍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양우석 감독은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이야기를 담은 <변호인>(2013), 북한의 군사정변으로 촉발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막으려는 정치스릴러 <강철비>(2017), 그리고 첨예한 남북 군사대립의 한복판에 미국대통령까지 끌어들인 <강철비2 정상회담>(2020)까지 드라마틱한 정치적·군사적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가 한반도와 동북아의 시한폭탄을 접고, 가족이야기에 집중한다. ‘내 아들의 이야기’를 정자은행과 만두로 빚어낸다.
서울 시내 고층빌딩 사이의 금싸라기 땅에 자리 잡은 오래된 한옥식당 ‘평만옥’은 한국전쟁 때 피난 온 함무옥(김윤석)이 오랫동안 운영해온 맛집이다. 화장실 종이 한 칸까지 아끼며 모든 것을 만두 빚는 것에만 쏟아 부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아들 함문석(이승기)이 출가해버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명문의대를 다니던 유일한 혈육이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평만옥에 두 아이가 찾아온다. 함문석의 자식이란다. 문석이 의대생 시절 제공한 (의학적) 정자의 결정체란다. 사정이 어찌 되었던 함무옥에게는 이만저만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가문의 대가 이어질 수 있단다. 이제부터 ‘유전자’를 둘러싼 희망과 절망, 기대와 반전의 휴먼드라마가 펼쳐진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함무옥은 전형적인 인물을 연기한다. 한국전쟁 당시 월남했고, 전쟁의 혼란에서 하나뿐인 여동생을 잃었고, 죽을 듯이 일만 한다. 아내마저 그렇게 보낸다. 그는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대를 잇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온 그 시대의 표상이다. 가부장적이다거나,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치일 뿐이다. 반백년의 세월이 그에게 남긴 최선의 삶의 방식이었을 테니.
대가족이승기가 연기한 아들 함문석은 80년대 후반 학번을 연기한다. 아버지는 전쟁의 상흔을 가슴에 품었고, 아들은 아마도 그런 아버지 밑에서 올바르고, 헌신적인 의사가 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단출하게 차려진 어머니의 초상화를 보고는 속세의 인연을 끊기로 작심했을 것이다. 아들에게는 부나 명예 등 세속적인 성공이 덧없음을 마지막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런 식으로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양우석 감독은 그 끊어진 속세의 연을, 가장 세속적인 인연으로 다시 이어준다. 바로 언젠가, 어디선가 시작된 인연을. 물론, 한바탕 소동극을 통해 과학적 DNA의 정치(精致)한 가족의 완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한 번 더 인연의 소중함과 궁극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김윤석, 이승기의 캐릭터 연기도 돋보였지만 김성령, 박수영의 완벽한 조연이 드라마에 활력을 더한다. 연말에 가족들이 보기에 적당한 영화이다. 아직도, 가족이 다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면 말이다.
▶대가족 (영제:About Family) ▶각본/감독: 양우석 ▶출연: 김윤석, 이승기, 김성령, 강한나, 박수영, 김시우, 윤채나, 심희섭, 길해연, 이순재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 게니우스 ▶개봉:2024년12월11일/12세이상관람가/106분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