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자그마치 60년도 더 된 1961년 4월 12일에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이는 미국의 닐 암스트롱이 1969년 7월 20일에 아폴로 11호를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 전까지 가장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후 2020년대 전후 몇몇 국가가 '우주군'을 창설했다. 우주에서의 전투행위를 금지하는 우주조약이 있어 별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우주시대를 맞아 이를 선도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 혹시 모를 우주전쟁을 대비한다고 하지만, 시기상조가 아닌가 싶다.
몇 년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페이스 포스>가 두 시즌에 걸쳐 미합중국 우주군을 풍자적으로 다루며 조직의 쓸모없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그런데 장장 40여 년 전에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역시 우주군의 쓸모없음을 다룬 바 있다. <에반게리온>으로 유명한 제작사 가이낙스의 첫 작품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다.
실체가 없는 조직 우주군의 유인 우주 계획 ▲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한 장면.ⓒ 미디어캐슬
제트기 파일럿을 꿈꿔 해군에 들어가려 했지만 성적이 안 되어 우주군에 입대한 시로츠구. 그런데 우주군이란 게 말만 번지르르하지 하는 게 없다. 그래도 훈련,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힘들게 하는데 군인들이 어이없게 죽어 나간다. 그러니 인원은 계속 줄어들어 10명 남짓이고 군인들은 전쟁에 나설 일이 없으니 하릴없이 빈둥거릴 뿐이다.
어느 날 시로츠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유흥가에 가서 노는데, 길거리에서 사이비 종교를 전도하고 있는 여자 리이쿠니를 본다. 그녀에게 끌렸는지 다음 날 집으로 찾아가는 시로츠구, 그녀의 말에 크게 감화를 받는다. 우주군이란 게 너무 멋진 일이라니. 그녀에겐 폭력과 전쟁이 판치는 이곳은 곧 사라질 곳이고 우주의 별나라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마침 우주군에서 유인 우주 계획을 발표한다. 비행사로 지원하는 시로츠구, 계속해서 리이쿠니를 찾아가지만 그녀는 그에게 이성적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인 우주 계획엔 우주군사령관의 사비가 들어갔고 국방부는 이를 외교적으로 이용해먹으려는 수작이다. 계획만 있을 뿐 실체는 모호했다. 시로츠구는 리이쿠니의 마음도 얻지 못하고 유인 우주 계획에도 싫증이 나고 마는데.
없으니만 못한 정부 조직 ▲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의 한 장면.ⓒ 미디어캐슬
우주군의 일원으로 인류 최초 우주비행사가 주인공이지만 누구나 기대할 만한 '우주전쟁' 비슷한 것도 나오지 않는 작품이 바로 <왕립우주군>이다. 스타워즈나 건담 시리즈를 연상했다면 일찌감치 기대를 버리는 게 좋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 언급한 명작들보다 좋으면 좋았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작품 속 '우주군'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훈련이나 실험으로 젊은이들이 죽어 나가고 10명 남짓 남은 우주군들은 우주전쟁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 또는 우주군에선 이룰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차라리 없으니만 못한 정부 조직은 지금의 한국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런 와중에 우주군 총사령관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유인 우주 계획을 선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자기 딴에는 우주군의 총체적 난국을 파헤칠 묘안이라고 생각한 걸까. 하지만 그 계획을 승인한 정부 윗선은 우주군 자체를 외교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애꿎은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배경에 우주군이 주캐릭터군으로 나오는 만큼 작화가 어려울 텐데 스태프가 어마어마하다.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와 사다모토 요시유키, <종말의 발키리>의 이이다 후미오 등이다. 거기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상황일본에서 이 작품이 만들어진 때는 1980년대 중반으로 이른바 '버블 경제'의 한복판이었다. 일본의 자산 가치가 하늘 높이 상승하고 경제 활동이 과열되었으며 생활 수준이 크게 향상됐다. 그러니 이 작품 속 무기력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와닿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거품이 빠졌고 '잃어버린 30년' 불황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머지않아 들이닥칠 일본 경제의 짙은 먹구름 속 분위기를 미리 예견할 걸까 아니면 당대 일본의 공무원 사회를 꼬집은 걸까. 후자에 가깝다고 보는데, 몇십 년이 지난 한국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극 중의 시로츠구와 리이쿠니. 그들은 서로를 지지하고 의지하지만 세상의 작은 움직임에도 삶이 크게 요동친다. 시로츠구는 수시로 무기력과 활력의 모습을 오가며 리이쿠니는 사이비 종교의 가르침에 빠져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흔들리는 삶을 다 잡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그 시절뿐만 아니라 이 시절의 빙퉁그러진 자화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