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넷플릭스 시리즈 <백년의 고독>▲ '백년의 고독'에서 반란군을 지휘하는 호세 아우엘리오 대령은 보수당 정권의 악행에 치를 떤다.ⓒ 넷플릭스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콜롬비아 출신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 <백년의 고독>은 환상과 현실이 절묘한 조화를 이로는 소설이다. 넷플릭스는 이 작품을 동일 제목의 드라마로 옮겼는데, 사실 처음엔 보기가 망설여졌다.
원작인 <백년의 고독>이 워낙 몽환적이면서도 무섭도록 현실을 묘사하고 있는데, 드라마가 이를 잘 녹여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보고 나니, 원작의 향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백년의 고독>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하려면 엄청난 물량이 필요할 것이다. 스케일과 서사가 워낙 방대해서다. 워너브러더스나 파라마운트 등 미국 헐리우드 스튜디오가 탐을 낼 만한 프로젝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 <백년의 고독>은 원작자의 조국 콜롬비아가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시리즈의 모든 미장센이 그저 회화에서 어렴풋이 접해봤을 라틴 아메리카의 정경을 담아낸다. 색감도 고풍스러우면서 독특하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주인공들의 의상이다. 등장인물의 의상은 원시 공동체 마콘도가 외부 세상과 접촉면을 넓혀 나갈수록 점점 현대화되고 세련된다.
개인적으로 이런 디테일은 작가의 조국 콜롬비아가 제작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만약 미국이 이 드라마를 제작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주인공들은 스페인어가 아닌 영어로 대사를 말했을 테고, 원작의 느낌도 반감되지 않았을까.
부엔디아 가문의 흥망성쇠 ▲ 콜롬비아가 제작한 '백년의 고독'은 원작의 느낌을 영상으로 옮긴다.ⓒ 넷플릭스
<백년의 고독>의 핵심 줄기는 부엔디아 가족의 흥망성쇠다. 주인공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르술라와 결혼한다. 그리고 원래 거주했던 마을을 떠나 마콘도라는 공동체를 구축한다.
마콘도는 흡사 노자가 <도덕경>애서 그린 이상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콘도는 점차 제도권의 자장으로 빨려 들어간다.
콜롬비아 정부가 파견한 조정관 아폴리나르 모스코테는 마콘도 소재 모든 주택 외벽을 푸른색으로 칠할 것을 명한다. 그리고 결혼하는 남녀는 반드시 가톨릭 사제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선포한다.
푸른색은 콜롬비아 기득권 세력인 보수당의 상징색이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콜롬비아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에서 정당과 함께 제도권력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기관이다. 즉, 정당과 교회로 상징되는 제도적 질서가 원시 공동체인 마콘도를 손아귀에 넣으려 한 것이다.
한편, 부엔디아 가족의 둘째인 호세 아우렐리오(클라우디오 카나토는 모스코데 집정관의 막내딸 레메디오스와 결혼했다.
부엔디아 가족은 마콘도의 정신적 지주다. 그리고 모스코테 가문은 제도 권력의 상징이다. 두 가문이 사돈관계를 맺었다는 건 원시 공동체와 제도권 권력이 얽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가문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레메디오스가 그만 숨을 거둔 것이다. 아우렐리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
여기까지는 환상의 영역이다. 하지만 집정관 모스코테가 부정선거를 획책하면서 이야기는 현실로 빨려 들어온다.
마콘도에선 첫 선거가 치러진다. 선거 결과 진보정당인 자유당이 승리했다. 하지만 집정관 모스코테는 표를 바꿔치기해서 보수당의 승리로 조작한다.
콜롬비아 전역에서 이런 식의 부정선거가 광범위하게 자행된다. 이러자 급진적 성향의 자유당 지지자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콜롬비아는 순식간에 내전에 휩싸인다. 결국 군부가 나서 비상조치를 발동하고, 군이 통치하기에 이른다.
부엔디아 가족도 이 같은 시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아우렐리오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려 했다. 하지만 장인인 모스코테의 부정선거와 계엄군의 폭압적 행태에 분노해 정부에 반기를 든다.
호세 아우렐리오는 봉기 전 친구들에게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한다.
"난 보수당원도, 자유당원도 아니야 그런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자유당을 택하겠지. 보수당원들은 사기꾼들이야. 본질이 그래."
국가폭력 고발한 마르케스 ▲ 넷플릭스 시리즈 '백년의 고독'ⓒ 넷플릭스
콜롬비아는 20세기 초 내전과 정치불안에 휩싸였고, 작가 마르케스는 내전으로 입은 상처를 자신의 작품에 투영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시리즈가 그리는 상황이 5.18 광주, 그리고 지금 12.3 비상계엄과 뒤이은 탄핵정국으로 혼란한 한국 상황과 닮았다.
사실 콜롬비아를 비롯한 라틴 아메리카나 우리나라 모두 순탄치 않은 20세기를 보냈다. 특히 미국을 등에 업은 군사정권의 폭정은 이 나라와 판박이다. 칠레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기 한 해 전인 1972년 한국 박정희 정권은 유신을 선포하고 종신집권을 획책했다.
그리고 1978년 아르헨티나 군부정권이 월드컵을 개최해 시민들의 관심을 스포츠로 돌리게 한 다음, 반체제 인사들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듯이 12.12군사반란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의 치부를 덮기 위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했다.
하지만 또 다른 우연의 일치일까. 작가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2024년 노벨위원회는 5.18광주·4.3 등 국가폭력을 겪은 한국 민중들을 다룬 한강 작가에게 역시 노벨문학상을 안겨줬다.
이 시리즈 <백년의 고독>에서 국가폭력에 희생당한 콜롬비아 민중들의 영혼에 그어진 상처를 본다. 동시에 지금 쉽지 않은 시간을 건너가는 우리 국민들의 고단함도 함께 느낀다.
다만, 마콘도의 설립자 호세 아르카디오의 독백 "시간이 멈추고 영원이 된다"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주 한인매체 <뉴스M>,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