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2024년 한국영화계에선 거장들의 신작과 신인감독들의 장편 데뷔작이 고루 주목받았다. 홍상수 감독의 두 장편이 이번에도 이변 없이 높은 순위에 올랐고 <무뢰한> 이후 근 10년 만에 돌아온 오승욱 감독의 <리볼버>도 평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밖에 <장손> <미망>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딸에 대하여> 등 네편은 모두 신인 연출자의 장편 데뷔작이며 <아침바다 갈매기는> <파묘>가 기성감독의 두 번째, 세 번째 장편영화임을 감안하면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창작자들의 작품 세계를 스크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셈이다.
1위를 차지한 <여행자의 필요>는 홍상수 감독의 대체 불가한 작가성이 발휘됐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2위의 <파묘>는 뚝심 있게 오컬트 장르를 밀어붙여온 장재현 감독이 자신의 개성과 대중성을 균형 있게 녹여냈다는 점에서 호평받았다. 3위에 오른 <장손>은 임권택 감독의 계보를 이어받는 또 한명의 신인이 등장했다는 면에서 영화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오정민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도 확인할 수 있었다. 4위의 <수유천>은 여전히 우리가 홍상수라는 세계를, 그의 영화를 탐구해야 하는 의의를 되새기게 했다. 5위로 호명된 <리볼버>는 한국영화의 누아르 멜로에 새 족적을 남긴 영화이며 그에 관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감지됐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순위권에 오른 유일한 다큐멘터리다. 6위에 그치긴 했지만 일부 필자들이 1위로 꼽으며 열렬한 지지를 보내온 작품이다.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피해자들에게 주목한 박수남, 박마의 감독의 “첨예한 역사적 기록인 동시에 격렬한 사적 기록”(남선우)이며 “기억하는 한 절대 지지 않을 존재, 시간, 투쟁”(김소희)이 빼곡하게 담겼다. “기억과 기록의 경계에서 몸을 (못)가누는 영화, 그 교란된 신체를 완성하는 일의 미학”(이보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찬사가 잇따랐다. 7위에는 김태양 감독의 <미망>이 올랐다. 근래 한국영화에서 서울은 “무대성적인 보편 공간”(듀나)으로 묘사되기 쉽지만 <미망>은 서울이란 “도시의 영혼을 강신술로 살려낸”(듀나) 듯한 선명한 인상을 준다. “변화무쌍한 감정의 장소를 포착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김성찬)으며 그 속에서 유영하는 인물들은 “일상이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시간이 아닌 매일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생동의 시간임을 증명”(이유채)한다. 8위는 “단연 올해의 히어로는 동춘. 올해의 술은 막걸리”(정재현)라는 평을 받은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다. “발효되는 막걸리가 기포 소리로 삶의 정답을 알려줄 거라는 상상력”(이자연)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선입견과 상상력을 깨부수는 아이러니한 어린이영화”(이지현)이자 “환멸에 대한 매우 순진한 우화”(이지현)다. “유년의 혼란 속에 마침내 답을 찾아 세상과 타인에게 공명의 손길을 건네려는 동춘의 의지”(정재현)는 관객에게 단단한 울림을 선사한다. 9위는 박이웅 감독의 <아침바다 갈매기는>이다. 어촌을 배경으로 “인구절벽에 이민 오고 싶은 나라이긴커녕 탈출하고픈 나라가 될 한국의 근미래”(황진미)가 섬뜩하리만치 현실적으로 묘사됐다. “조르주 심농의 소설에 나올 듯한 고전적이고 단순한 스릴러의 틀을 강원도 해안 마을을 배경으로 풀면서 캐릭터와 설정의 가능성을 신선하게 활용”(듀나)했다는 면에서 특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10위에는 이미랑 감독의 <딸에 대하여>가 이름을 올렸다. “돌봄에 대해, 대안 가족에 대해 분명한 주제를 전달하면서도, 섬세한 차이”(황진미)를 놓치지 않는 영화로 “원작이 가진 무게, 동시대의 날카로운 담론 등 무거운 짐들을 어깨에 지고서 흔들리지 않고 영화의 메시지를 뚝심 있게 전”(문주화)했다. “구석진 곳들에 따스한 빛을 쏟아 주는”(이유채) <딸에 대하여>는 “새로운 여성감독의 탄생이라는 귀한 영역을 개척했다”(문주화)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