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발탁하기 위한 을사늑약이 체결된다. 이후 일본의 대한제국 식민화 작업이 본격화된다.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현빈)이 이끄는 독립군이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일본군 육군소좌 모리(박훈)를 포함한 일본군을 생포한다. 하지만 안중근은 군인의 인권 보장 등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를 석방시키고, 이 때문에 독립군은 역습을 당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살아남은 독립군들이 어떤 경우에도 안중근을 두둔해서는 안된다며 균열이 일어날 때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에 당도한 안중근이 나타난다. 그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며 손가락을 잘라 결의한다. 안중근의 결정을 늘 지지하는 우덕순(박정민), 대한의군에서 일본어 통역을 담당해온 독립군 김상현(조우진), 중국 군벌과 연이 있어 독립군에 폭약 등 무기를 수급해주는 공부인(전여빈), 러시아에 적을 두고 독립군 활동을 지원하는 최재형(유재명), 포로 석방을 두고 안중근과 갈등을 빚고 암살 사건의 새로운 리더가 되고자 하는 이창섭(이동욱) 등이 모여 ‘늙은 늑대 처단’ , 즉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암살을 위해 뜻을 모은다.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독립군들은 기차역에서 그를 암살하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일본군과 접전에서 살아남은 독립군 중 하나가 그들에게 내부 정보를 흘리는 ‘밀정’이 됐다는 의심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거사를 치른다.” 영화를 보는 한국 관객이라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두 알고 있다. 2022년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영웅>을 비롯해 같은 사건을 극화한 창작물들도 있다. <하얼빈>은 지금까지 안중근 의사를 다룬 픽션들과 차별화된 길을 간다. 초반부 함경북도 신아산의 전투 시퀀스는 독립군이 크게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육의 참혹함과 죽음의 공포를 리얼하게 담아낸다.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두렵고 위태롭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묘사했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위시한 반전(反戰) 영화들이 떠오른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동료들이 목숨을 잃게 됐다는 안중근의 죄책감,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동지가 곧 배신자일 수 있다는 긴장감 등을 내밀하게 묘사하며 10월26일 거사에 이르기까지 독립투사들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특히 서로를 의심하며 스파이를 찾아내는 구성은 첩보 드라마를 닮았다. 우민호 감독의 <마약왕>이 <스카페이스> 등 범죄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장 피에르 멜빌의 프렌치 누아르의 영향을 받았다면 <하얼빈>의 후반부는 존 르 카레의 서늘한 스파이물을 연상시킨다. CG의 힘을 빌리지 않고 몽골, 라트비아에서 진행한 실제 로케이션 촬영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오히려 숭고해지는 인간의 정신을 웅장한 필치로 그려낸다. 또한 안중근 한명의 영웅적 행위에 집중하기보다 하얼빈 의거에 당도하기까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투사들의 번민과 희생이 있었음을 고집 있게 밀어붙인 것은 성탄절 대목에 개봉하는 대작으로서 드문 선택이다. 제49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초청작.
close-up홍경표 촬영감독은 <듄> 시리즈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등을 촬영한 아리 알렉사 65로 <하얼빈>을 찍었다. 실제 독립군의 활동 무대였던 중국, 러시아 지역을 닮은 몽골, 라트비아 현지 로케이션이 압도적인 해상도와 선명도를 자랑하는 카메라 장비와 거장 촬영감독을 만나 스크린에 옮겨졌다.
check this movie<남산의 부장들> 감독 우민호, 2019우민호 감독이 1979년 10월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다룬 영화. 공교롭게도 하얼빈 거사는 1909년 10월26일에 일어났고, <남산의 부장들>에는 10월26일 남산 안중근 기념관의 안중근 동상 제막식이 취소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두 사건이 같은 날 발생했고 이를 다룬 두 작품을 같은 감독이 연출했지만 다른 장르적 스타일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비교 감상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