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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목숨 잃게 한 안중근의 선택, 처절하게 외로웠던 영웅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2-25
[리뷰] 영화 <하얼빈> 하얼빈 스틸컷ⓒ CJ ENM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얼빈>의 예고편은 '늙은 늑대', 즉 이토 히로부미 사냥을 맹세하는 안중근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늙은 늑대는 '늙은 여우'와 대비되는 듯하다. 범인들은 을미사변('여우사냥') 당시 명성황후를 '늙은 여우'라 불렀다.

이토 히로부미는 을미사변 당시 일제의 총리대신이었다. 안중근은 이토의 두 번째 죄악으로 '자객들을 황궁에 돌입시켜 대한 황후 폐하를 시살한 죄'를 언급했다. 그 때문일까. <하얼빈>은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 사냥, 즉 하얼빈 의거를 을미사변에 대한 복수로 풀이했다.

영웅으로 칭송된 안중근

 하얼빈 스틸컷ⓒ CJ ENM
하얼빈 의거는 일제의 한국 강제병합 직전,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상징하는 쾌거로 언급된다. 동시에 안중근은 진정한 영웅으로 칭송됐다. 그 때문일까. 이미 몇 번이고 영화화된 하얼빈 의거를 다시 영화화한다는 건 익숙한 영웅 신화를 반복해서 듣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얼빈>은 영화 전반에 걸쳐 안중근의 인간적인 면모를 묘사하려 했다.

<하얼빈>은 안중근이 얼어붙은 두만강 위를 헤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동료들에게 돌아갔지만, 대부분의 동료들은 그를 냉소하거나, 분노를 표한다. 여기에서는 훗날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해 영웅 중의 영웅으로 불리게 될 안중근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법정에서 일제의 침략을 당당하게 성토하는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과 같은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방황하며 괴로워하는 안중근이 있을 뿐이다.

그 직전에 안중근은 의병대(대한의군)를 이끌며 함경북도 경흥 일대에서 일본군을 기습했고, 처절한 사투 끝에 승리를 거뒀다(신아산 전투). 이후 동료들의 반발에도 일본군 포로들을 만국공법에 의거해 석방했다. 안중근의 선택에 따라 석방된 일본군 포로들은 안중근의 의병대를 추격했고, 안중근의 수많은 동료들은 잔혹하게 살해됐다. 안중근이 방황하며 괴로워한 건 이 때문이다.

안중근의 선택

 하얼빈 스틸컷ⓒ CJ ENM
그동안 한국 역사영화 속에 다뤄진 영웅의 모습과 이들의 방황과 고뇌는 압도적인 적을 상대해야 하며 발생했다. 끊임없이 시기하고 의심하는 국왕이나 조정 대신들, 동료들, 비겁한 배신자들 등이다. 영화 속에서 영웅은 잘못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안중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선택 때문에 수많은 동료들을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 죽은 동료들의 목숨을 대신해, 이토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는 사이 안중근이 살려준 일본군 포로들은 안중근과 동료들을 끊임없이 추격하며 두고두고 궁지로 몰아넣는다. 이 사이 밀정에 대한 의심도 깊어진다. 결국 동료에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안중근마저도, 밀정을 색출하는 데 나선다.

<하얼빈>에서 하얼빈 의거는 안중근의 독립에 대한 강렬한 의지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이는 자신의 선택이 초래한 결과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다. <하얼빈>은 하얼빈 의거라는 '민족적 쾌거'를 안중근이라는 인간의 속죄 맥락에서 접근한다. 동시에 여전히 과거에 저지른 인과율(동료들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며 시달리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하얼빈 의거 이후, 안중근의 법정 투쟁과 옥중에서의 초연함이 그려진다. 조마리아 여사가 보냈다는 허구의 편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그 대신 안중근이 교수형을 앞두고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의 두려움이 부각된다. 안중근뿐만이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일본군에 쫓기고 잡혀 고문 당하거나, 가족을 잃고 폐인이 되거나, 독립의 희망을 잃고("아무도 우릴 기억하지 못할 거야") 일부는 변절했다.

이들이 이뤄낸 하얼빈 의거는 일본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하는 외로운 싸움이기도 했다. 이들은 영화 <명량>의 이순신처럼 두려움을 용기로 바꾼 것이 아니라, 마지막까지도 두려움과 함께 살아갔고 죽어갔다.

결국 영화는 영웅의 위대함 대신, 인간적인 고통을 그려냈는데, 이 점에서 하나의 감동을 찾을 수 있다. 아마도 한국 역사영화 중에서도 영웅들을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화한 것이리라.

안중근이 일본군 포로를 석방하기로 선택하며, 동료들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선택을 한 걸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하얼빈 의거 직전, 안중근과 동료들은 밀정의 존재를 파악했다. 이 때 안중근은 밀정으로 지목된 이에게도 기회를 주자면서 동료들을 설득한다.

영화는 밀정의 마지막 선택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우리는 안중근의 선택이 실수였는지, 아니면 신념이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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