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진 감독 연출[데일리안 = 류지윤 기자]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여옥(강애심 분)과 금자(이선주 분)는 중년의 동성 커플이다. 어느 날 한밤중 여옥의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 전화가 걸려오고, 두 사람은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20년 만에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여옥은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가려 했지만, 금자는 자신이 20년간 운전대를 잡아왔다며 너스레를 떨며 함께 길을 떠난다.
여정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다. 대화를 나누던 중 금자가 차선 변경에 실패하며 길을 잘못 들어 고향으로 가는 길이 한층 멀어진다.
주유소에 들렀을 때는 직원이 그들의 전라도 말씨를 알아듣고 동향 사람이라며 친근하게 말을 건다. 그러나 두 사람은 괜한 오해를 살까 봐 서울 토박이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동향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한가득 안아들고 다시 길을 떠난다.
여정 중 교통경찰에게 단속되는 위기도 닥친다. 이때 금자는 자신들을 손주를 보는 할머니로 가장해 위기를 모면한다. 러닝타임 22분.
이런 크고 작은 사건들이 거쳐 두 사람은 드디어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여옥과 금자는 환영받지 못하는 문상객이다.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할 기회조차 평범하게 주어지지 못한 셈이다. 여옥의 전 시댁의 박대가 이어지는 가운데, 전 남편의 부인 미정(우미화 분)만이 두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여옥과 금자의 나들이는 짧은 여정을 통해 동성 커플로서 두 사람이 직면하는 차별과 경계를 담담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두 사람이 장례식장에 가는 여정은 겉으로 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길을 잘못 들거나 주유소에서 직원과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일, 교통경찰과의 실랑이 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의 이야기는 동성 커플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평범하지 않은 층위를 가진다.
주유소에서 동향임을 밝히지 않으려는 모습이나, 교통경찰과의 대치에서 일부러 할머니 행세를 하는 장면은 이들이 타인의 시선에서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지 보여준다.
그렇다고 무겁고 진지하지 않다. 두 사람의 부부 케미스트리가 잔잔한 유머를 만들어 낸다. 이러한 유머는 관객들에게 감정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대부분 이들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전 남편의 부인 미정은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데, 이 장면은 그동안 차별과 경계를 받아온 두 사람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가 된다.
이는 비단 동성 커플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이 마주하는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 작은 위로와 희망을 남긴다.
장례식장은 두 사람의 여정이 끝나는 동시에,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한 나들이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타인들의 시선 속으로 출발하는 두 사람의 나들이가 경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