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 맛집이 된 지상파 금토드라마MBC와 SBS는 각자의 금토드라마를 시청자와 평단 모두에 각인시키며 약진했다. 그리고 이들이 기획한 금토드라마의 대다수는 오랫동안 지상파 시리즈의 약점이라 불렸던 장르물이다. 올해 MBC는 “파업 이후 제작이 난항을 겪으면서 이해할 수 없는 편성작들이 많았는데 다시 ‘드라마 왕국’의 폼을 찾았다”(박현주). 시작은 역대 MBC 금토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액션 코믹 사극 <밤에 피는 꽃>이었다. 이후 MBC 금토드라마가 한결같이 집중한 장르는 스릴러와 추리물이다. 상반기엔 사고로 아들을 잃은 교수(김남주)가 복수를 꿈꾸며 진범을 찾아나서는 <원더풀 월드>, 추리소설가 시어머니(이혜영)와 정신건강전문의 며느리(김희선)가 범죄자를 공조 추적하는 <우리, 집>이 편성됐다. 하반기엔 “올해 최고의 드라마 두편이 MBC에서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피어스 콘란)라는 찬사 속에 “한국이 가장 잘하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고품질 TV 스릴러”(피어스 콘란) 두편,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과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시청자를 찾았다. 두 작품은 “익숙한 장르를 활용해 영리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례”(피어스 콘란)인 동시에 “메시지와 완성도 측면에서 수작”(박현주)이라 평가받으며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한편 SBS의 금토드라마는 범죄 소탕물과 복수극의 카타르시스를 결합한 작품을 제작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SBS가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온 키워드는 ‘사적 제재’다. 재력과 인맥을 활용해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재벌X형사> 속 재벌 겸 형사(안보현), 판사(박신혜)의 몸에 들어간 지옥의 악마가 흉악범을 심판, 살해하는 <지옥에서 온 판사>, 현재 방영 중인 <열혈사제2>까지. SBS 금토드라마의 시금석인 <모범택시> 시리즈로부터 이어진 “복수심과 한 등 오랜 한국적 정서가 사법 시스템이 처단하지 못하는 악인들에게 번진”(오진우) 실례이자 “징후를 넘어 사회에 만연한 무기력”(오진우)이 태동한 수요라고 볼 수 있다. 마약에 중독된 마약팀 경감(지성)이 후배 경찰의 복수를 도모하거나(<커넥션>) 이혼 변호사가 외도를 저지른 남편에게 복수를 계획하는(<굿 파트너>) 등 범죄물과 법정물에 통쾌한 복수극을 결합한 시도 역시 눈에 띈다. “맛이 조금씩 다른 착향 ‘사이다’를 내놓으며 안방극장의 군주로 자리매김한 <범죄도시>의 적자들”(진명현)인 일련의 작품들은 “작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맞춤형 드라마 포맷의 안전한 릴레이”(진명현)로 기능하며 트렌드를 이끌었다.
검증된 IP의 확장과 여성 서사, 그리고 <선재 업고 튀어>검증된 IP로부터 파생한 시리즈가 연이어 제작됐다. 웹소설(<내 남편과 결혼해줘>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웨딩 임파서블> <멱살 한번 잡힙시다> <선재 업고 튀어> 등), 웹툰(<살인자ㅇ난감> <피라미드 게임> <닭강정> <정년이> 등)에서 재탄생한 작품은 물론 기존 시리즈의 세계관을 잇는 스핀오프(<좋거나 나쁜 동재> <사장님의 식단표>)까지 등장했다. 이는 “타깃 시청자가 비교적 확실하면서 팬층을 보장”(남선우)하지만 “위험부담을 줄이는 시도가 긍정적인 신호로 보이지만은 않는다”(남선우)는 점에서 향후 추이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웹소설을 원천 IP로 둔 <내 남편과 결혼해줘> <선재 업고 튀어> 등의 흥행 시리즈는 “소위 여성향(여성들에게 초점을 두고 만들어진 문화상품의 성향.-편집자) 기반 콘텐츠가 비교적 적은 규모의 제작비, 대형 스타의 캐스팅 없이도 히트작 제작이 가능하다”(박현주)는 잠재성을 입증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돌과 팬, 소꿉친구 로맨스, 시간을 초월한 구원 서사 등 웹소설에서 자주 다뤄지는 소재가 꾸준히 영상화되는”(조현나) 점 또한 시청자들이 어떤 서사에 반응하는지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자리했다. 여성향 웹소설의 화소를 포함해 양과 질 모두를 담보하는 여성 서사를 향한 수요는 다양한 형태로 반영됐다. 총평에서 언급한 <밤에 피는 꽃> <정숙한 세일즈>를 포함해 “위탁모인 여성 가장의 아래에서 다져진 자매애와 비혼여성이 겪는 현실을 로맨틱코미디의 문법으로 풀어낸 <손해 보기 싫어서>, 여성 국극 장르를 사람들에게 인식시킨 <정년이>, 여성 청소년들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보다 자유로운 형태의 연대를 상상할 수 있게 한 <피라미드 게임>” (복길) 등은 여성 캐릭터의 정족수를 우선 채우는 식의 이야기를 넘어 “세상 속에서 변화하는 여성과 여성의 관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며”(복길)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기념할 만하다.
올해의 트렌드에서 기자, 평론가가 가장 많이 언급한 단일 작품은 <선재 업고 튀어>다. 이 작품 또한 “30대로 접어든 밀레니얼 여성들의 경험과 추억을 공략”(복길)하고 “2000년대 초중반 하이틴 문화와 현재진행형인 아이돌 팬덤 문화를 교차하며 한 세대 이상의 여성 시청자 집단을 움직인”(복길) 사례라는 점에서 여성향 작품의 대표 케이스로 연결지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변우석이라는 “새로운 얼굴’의 파급력”(이다혜)을 내세우며 “오랜만에 찾아온 브라운관 스타 열풍”(이우빈)을 일으켰고 회귀 설정을 활용해 “비교적 가까운 과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을 만들며 폭넓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을 겨냥”(김선영)하며 “3~6%의 시청률 이상의 화제성”(조현나)을 가능케 했다.
퀴어 프렌들리 코리아를 향하여“다양성.”(김혜리) 2024년 한국 시리즈의 퀴어 캐릭터는 더이상 한국 미디어에서 주동 인물을 부각하는 조미료로 활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엄연한 서사를 지닌 주체로서 주류 가치에 균열을 내는 사회적 존재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게이 남성 고영(남윤수)의 삶과 사랑을 그린 <대도시의 사랑법>은 “작품 내적으로는 퀴어 드라마의 완성도와 대중성을 폭넓게 알리고 작품 외적으로는 미디어상 퀴어 재현을 대하는 인식의 격차를 재고”(김소미)하며 “유의미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냈다”(김소미). 백연여고 2학년5반이라는 특수 집단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폭력의 묵인을 다룬 <피라미드 게임>엔 서로 사랑하는 두 고등학생 예림(강나언)과 은정(이주연)이 등장한다. 둘 사이의 오묘한 기류를 묘사하는 데 그쳤던 원작 웹툰보다 상호간 느끼는 성적인 이끌림을 표면화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중 드라마인 <웨딩 임파서블>의 도한(김도완)이나 <엄마친구아들>의 세환(조승연) 등 퀴어 캐릭터도 작품의 핵심적인 조연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퀴어 소재는 작품 바깥에서 소동을 빚기도 했다. 웹툰 <정년이>의 주요한 캐릭터이자 정년과 사랑을 키우는 레즈비언 캐릭터 부용이 시리즈에선 삭제돼 비판이 가해졌고, <대도시의 사랑법>은 소재로 인해 일부 단체로부터 방영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시위가 일었다. “드라마 생산자들과 대중에게 숙제 같은 드라마로 기억될”(오수경) 두 작품이 향후 “대중의 안목을 믿고 조금 더 과감한 시도를 하는 드라마들이 많아”(오수경)지게 만드는 단초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