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 포스터, 사진제공|CJ ENM■편파적인 한줄평 : 요즘도 ‘대서사시’가 통할 지는 모르겠지만.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을 향해 시네마틱 대서사시가 펼쳐진다. 웅장하지만 느리고, 어둡지만 묵직하다. 다만 좋은 작품이나 좋아할 영화일지는 미지수다. 숏폼이 성행하는 요즘 무게감 있는 ‘대서사시’가 젊은 세대에게까지 통할 지 예단할 수 없는,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이다.
‘하얼빈’은 1909년 일본의 숨 막히는 추적 속,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안중근과 대한제국 의군들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 우민호 감독의 신작으로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릴리 프랭키, 이동욱 등이 뭉쳐 참혹했던 일제강점기 속 독립군의 불꽃을 살려낸다.
영화 ‘하얼빈’ 속 장면들.분명 큰 스크린으로 필람해야하는 영화긴 하다. 우민호 감독은 촬영 내내 ‘이것이 시네마다’라는 말을 되뇌였던 듯 매 장면 공들이고 또 공들인다. 하나의 미술품처럼 관람해도 될 만큼, 담배연기의 곡선 하나까지 그림처럼 비치도록 섬세하게 프레임 안에 담는다. 풍광도, 인물 클로즈업 하나도 허투루 배치한 장면이 없다. 이런 미쟝센은 독립을 위한 ‘거사’라는 소재와 맞물려 작품의 묵직한 맛을 더욱 짙게 한다.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위한 여정’이란 단순한 전개 속 ‘밀정은 누구인가’란 수수께끼를 첨부한 건 현명한 선택이다. 이야기에 보다 몰입감이 생긴다. 또한 제작진이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시국 속에서 ‘역사 속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한마디가 자꾸만 떠오르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 내로라 하는 배우들의 조합은 누구 하나 튀지 않고 완벽한 앙상블을 이룬다. 현빈은 나약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쓰면서도 인류애를 잃지 않는 안중근을 인간적으로 그려내고, 이동욱이 뜨겁고 냉철한 독립군 이창섭을 기복 없이 표현해 캐릭터간 대비를 보여준다. 그외 조우진, 박정민, 전여빈, 박훈, 유재명 등도 안정적이다. 특히 릴리 프랭키는 단순한 화각 속 고정된 동선 안에서도 대단한 카리스마를 뿜는다.
여기까지가 장점이라면, 불호로 비칠 지점도 명확하다. 하나는 화면의 톤이 굉장히 어둡다는 점이다. 7일간의 여정을 2시간에 걸쳐 보여주는데 대부분 낮은 조도 때문에 갑갑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대서사시’가 더욱 느리게 느껴지는 이유기도 하다.
‘영웅’ 아닌 인간적 고뇌에 빠진 ‘안중근’에게 캐릭터 호감도가 빨리 쌓이지 않는 것도 아쉽다. 또한 ‘밀정’에 대한 연민 어린 전사가 보는 이에 따라선 ‘굳이 보여줘야 했나’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엔딩을 위한 포석이라지만, 그 반문이 100% 해결되지 않는 이도 있겠다. 오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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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원 기자 edaon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