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 431] 영화 <대가족>▲ 영화 <대가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01.
"집에 니 자식들이 찾아왔다."
유명한 만두 가게인 평만옥의 사장 무옥(김윤석 분)은 승려가 된 아들 문석(이승기 분)이 못마땅하다. 종갓집 외동 손자로 태어난 아들의 선택으로 인해 대(代)를 잇지 못할 상황에 처해서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들의 덕망이 세상의 인정을 받아도 가문을 잇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가 그의 삶을 붙들고 늘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민국(김시우 분), 민선(윤채나 분) 두 아이가 문석을 찾아온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 맡겨졌던 아이들이다. 이 사실은 라디오를 통해 전 국민 앞에 공개되고, 문석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떻게든 대를 이을 수 있게 된 무옥만이 행복할 뿐이다.
영화 <대가족>은 <변호인>(2013)과 <강철비>(2017, 2020) 시리즈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소재로 관객을 만나왔던 양우석 감독의 신작이다. 가문을 잇는 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 무옥과 속세를 떠나 출가했으나 과거 자신의 업보로 인해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아들 문석, 그리고 헤어질 위기에 처한 민국, 민선 남매 삼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관계상으로는 만남과 이별이라는 일반적이면서도 다소 가벼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가족의 대(代)라는 측면에서 가문과 핏줄이라는 중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이 물리적으로는 삼대에 걸친 다양한 인물과 그룹의 이야기가 뒤섞이고, 현재와 과거 각각의 시대에서 공유하는 가치관을 그려내고 있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우려스러운 점 하나는 서사의 전개가 복잡하고 산만해질 수 있다는 부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양우석 감독은 이 지점을 신 사이의 빠른 전환과 서사의 촘촘한 배치를 통한 나름의 속도감으로 극복해 낸다. 분위기 역시 그리 무겁지 않게 가져가며 전체적인 톤 앤 매너를 유지하려는 모습이다. 확실히 영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 영화 <대가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2.
승려 문석과 친자임을 주장하는 생각지도 못한 두 아이와의 만남에는 대학 시절 연인 관계였던 가연(강한나 분)과 그의 아빠 한 원장(최무성 분)이 있다. 교제 당시 문석은 대학 교수이자 산부인과 의사이던 한 원장의 지시로 정자 기증을 해야만 했다. 그때는 딸 가연과의 만남, 일정 수준 이상의 스킨십을 방해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횟수가 좀 많긴 많다. 517번의 기증. 하지만 한 원장이 자신의 유전자를 몰래 기증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잘생긴 외모에 국내 최고 대학의 의대생이던 문석의 정자는 그렇게 413번의 착상 시도에 이용되고, 쌍둥이를 포함해 420명의 아이를 세상에 탄생시킨다. 민국, 민선 남매도 어쩌면 그중 하나의 경우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문석의 정자 기증과 이로 인해 태어난 아이들의 수는 일면 가벼운 소재로만 여겨지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의 윗세대로부터 시작되는 혈연관계를 이어가는 일에 대한 문제와 아래 세대에서 일어나는 혈연임에도 버려지고 외면당하는 일, 혹은 반대로 전통적인 의미의 혈연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충돌시키기 위한 설정에 가깝다.
이후의 이야기에 두 아이의 친자 확인에 대한 에피소드가 놓이게 되는 것은 타당한 일이다. 대(代)를 잇기 위해서는 피가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존재적 대상이 필요한 것일까? 에 대한 물음이다. 짧은 시간 많은 변화를 겪으며 급격히 달라지고 있는 혈연관계에 대한 인식의 차이도 물론 함께다.
03.
"손주라는 걸 증명하시고 절차대로 하셔야죠."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었던 가문의 영속이 가능해지자 무옥은 천륜을 운운하며 막무가내로 두 아이를 데려가고자 한다. 하지만 그동안 남매를 보살펴 왔던 보육원 측의 입장에서는 곤란한 일이다. 시대의 아이콘처럼 자리 잡은 스님 문석의 인지도를 믿고 어느 정도 배려는 해줄 수 있지만, 증명과 절차를 그냥 건너뛸 수는 없어서다. 이 과정에서 앞서 설명했던 '충돌의 서사'가 시작된다. 민국은 친아들이 맞지만 민선은 친딸이 아니어서 발생하는 서사 하나와 유전자 검사 결과 두 아이 모두 친자가 아니라는 사실로 인해 발생하는 또 다른 이야기 하나다. 두 지점을 통과하는 동안에 영화는 '무엇이 가족인가?' 하는 물음을 조금씩 선명하게 그려가기 시작한다.
다만 유전자 검사를 하고 두 아이 모두를 친자로 확인받기 위해 마련된 에피소드들은 극의 전개와 흥미를 위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하는 장면은 따로 있다. 두 아이가 등장하기 전, 만두를 빚는 방의 쪽문 밖으로 손님 가족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던 무옥의 모습. 그리고 반대의 측면에서 문석이 민국과 민선 남매를 부둥켜안은 채 행복해하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장면이다. 두 장면은 같은 공간 위에서 하나의 의미로 오버랩된다. 무옥과 문석의 자리만 정반대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아버지의 꿈이 그저 하나의 바람으로 남겨지던 곳과 실현되어 현실이 되는 곳이 동일한 장소라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제 그곳에 주어진 뜻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사실 이 영화는 한 꺼풀 벗겨내면 '이별'에 대한 감각을 얕은 기운처럼 느낄 수 있다. 6.25 사변을 경험하는 동안 아버지 무옥이 경험해야 했던 가족과의 이별, 이제 막 대학생이 되던 때의 문석이 겪어야 했던 어머니와의 사별. 그리고 두 남매가 사고로 부모를 잃어야 했던 기억.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같은 핏줄이 아니라는 이유로 떨어져 지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민국과 민선의 관계까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든 관계에 이별의 감정이 조금씩 스며들어 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삶과 죽음 사이의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의 방향을 읽어낼 수 있게 되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의 의도가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 영화 <대가족>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04.
"너넨 헤어지지 않는다.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 내 약속했잖니."
영화의 후반부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무옥은 무의식을 통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은 세상을 떠난 조상이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이 영화가 오랫동안 해왔던 하나의 물음,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나름의 대답이다. 이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제시되던 스님 문석의 설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윤회와 어머니의 관계, 세상 만물이 어머니와도 같다는 그의 말이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의미의 혈연관계에서 벗어나 가족의 의미를 한 뼘 더 확장하는 일이다. 물론 우리는 이 장면을 통해 아버지 무옥이 안고 살아왔던 가족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도 알 수 있다. 위로는 문중을 이어야 한다는 사명과 아래로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자식에 대한 어려움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의외의 만족감을 주는 작품들이 있다. 이 영화 <대가족>이 그랬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의 호연을 바탕으로 다양한 연령대가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으면서도 가족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양우석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시기라고 생각했고, 그 변화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해 보고 싶었다.' 영화 산업은 지금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관객들의 선택과 이 작품이 받아 들게 될 성적에 대해서는 지금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의 의도만큼은 충분히 담아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