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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아이돌 그룹 출신 3명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나

원천:3377TV   출시 시간:2024-12-18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힘을 낼 시간>지난 며칠간 여의도 국회 앞 집회 현장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건 피켓 대신 응원봉, 민중가요가 아닌 K-POP 리듬이었다. 외신에선 시위가 아니라 거대한 노상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며 놀라워하기도 했다. 2세대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는 고만고만한 히트송에서 21세기 저항가요로 재해석되기에 이른다.

K-POP의 인기는 그동안 절대 범접할 수 없다고 여기던 음악산업의 심장부, 미국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기에 이른다. 전성기 J-POP도 달성하지 못한 성과다. K-POP 열풍을 타고 국위 선양이라며 모두가 앞다투어 격찬하고 자긍심에 벅차오른다. 일본의 권위 있는 연말 '홍백가합전'은 지나치게 K-POP 가수가 많이 출연해 자국 아이돌이 소외감을 느낀다는 푸념이 대두하고, 본고장 미국에서도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인기 팝 가수 브루노 마스와 공연한 'APT' 열기가 만만치 않다.

그렇게 황금알 낳는 거위가 된 K-POP은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미국과 일본의 음악산업과 아이돌 육성책을 (마치 한국이 과거 제조업 기술을 벤치마킹하던 방식대로) 수용하고 재해석한 후발주자로선 최상의 성과인 셈이다. 물론 이런 음악산업의 상징은 전면에 나서는 가수들이다. 선진적인 기법 도입과 타국은 상상하지 못할 극한의 수련을 결합한 K-POP 가수들의 실력은 정평이 나 있다.

이는 어릴 적부터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를 키우듯 혹독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문제 역시 같은 궤를 따른다. 성공하지 못하면 이들의 인생은 보상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망돌(망한 아이돌)'은? 데뷔도 해보지 못한 연습생은? <힘을 낼 시간>은 화려한 조명에 가려진 대다수 아이돌 지망생의 후일담을 그리는 작업이다.

엉망진창 흘러가는 그들만의 수학여행 속 길을 찾다

▲ "힘을 낼 시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겨울 초입이지만 야자수 우거져 추위를 잊게 해주는 남쪽 섬 제주. 공항에 세 명의 청춘 남녀가 내렸다. 초행길인 듯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들은 게이트를 빠져나와 숙소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창밖을 응시하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세 사람. 이제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다. 아뿔싸! 셋 중 막내가 캐리어를 두고 내렸다. 뭐 찾으면 된다며 애써 사태를 수습한 일행은 독채 숙소에 짐을 푼다. 그들은 이제 생전 처음 누리는 제주 여행을 즐길 참이다.

그런데 20대 중반쯤 됨직한 이 셋의 행태가 좀 수상쩍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이들은 주변을 살피며 신경을 쓰는 눈치다. 그들의 정체가 알려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걸까? 연예인이라도 되는 걸까? 대체 왜 저렇게 편하게 여행을 즐기지 못한 채 사람들 이목을 신경을 쓰는지 모를 일이다.

사실 그들은 연예인으로 불리는 부류에 속하는 건 맞다. 심지어 아이돌 그룹 구성원들이기까지. 다만 그들이 '망돌(망한 아이돌)'이라는 점이 예상과 조금 벗어날 뿐이다. 이들은 각각 이미 해체했거나 껍데기만 남은 남녀 아이돌 그룹 출신이다. 여성 둘은 '러브앤리즈'의 '수민'과 '사랑', 청일점 청년은 '파이브 갓 차일드'의 '태희'다. 이들은 학창시절 남들처럼 학교생활을 경험하지 못했고, 수학여행도 따라갈 수 없었다. 이제 26살이 된 동창 수민과 태희는 후배 사랑과 함께 그들만의 늦깎이 수학여행 길에 오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여행계획은 출발부터 삐걱거린다. 사랑의 캐리어 분실은 시작에 불과했다. 밥을 먹다 옆 테이블과 시비가 붙고 그 위자료를 지급할 처지라 어렵게 긁어모은 여행경비는 허공에 증발한다. 숙소를 급히 저렴한 곳으로 옮기고 밥값을 벌기 위해 귤 수확 아르바이트를 뛰며 호구지책을 마련하느라 느긋한 여행은 글렀다. 대신 뜻밖의 인연들을 만나고, 이번 여행의 근본 목적이기도 한 새 출발을 위한 고민도 이어진다. 이 여행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릴까?

문화예술산업 청(소)년 노동자의 인권을 조명하다

▲ "힘을 낼 시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본 작품에 대한 평가에서 '국가인권위원회'와 '시선' 시리즈의 영향력을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2003년부터 10여 년 동안 계속 제작되었던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반가운 부활 프로젝트로 <힘을 낼 시간>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여섯 개의 시선>부터 영문 제목 'If You Were Me' 타이틀로 이어진 인권 감수성 개선을 위한 제작 의도는 이 영화에서도 면면히 계승되는 셈이다. 8번째 작업에 해당하는 <힘을 낼 시간>은 시리즈 중 최초의 장편인 동시에, 다양한 주제를 옴니버스로 수록했던 대부분 전작과 달리 제목처럼 청소년 인권에 집중했던 <시선1318>과 일맥상통하듯 특정 분야에 특화된 작업이기도 하다. 바로 '아이돌'로 표상되는 청소년 문화예술노동자의 인권 문제다.

2024년 내내 K-POP 아이돌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뉴진스 전속계약 문제는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관심을 유지하는 중이다. 개별 상황이 제각각이라 단순 대입은 불가능하지만, 대개 회사가 '갑', 미성년자가 대다수인 연습생과 아이돌이 '을'에 속하는 셈이다. K-POP 가수 육성과정에서 기획사가 대자본을 투입하고, 데뷔 후 다양한 경로로 벌어들인 수입이 투자금을 초과하면 '정산'이 이뤄지는 공식이다. 이런 특성 탓에 노-사 관계인가 아니면 민사계약 관계인가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급기야 뉴진스가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할 정도로 대중적 관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해당 사안은 '뜨거운 감자' 자체다.

물론 단기간에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긴 하지만, 그런 논란 가운데 10대 청소년들에게 전문직 못지않게 선망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K-POP 가수 지망생 절대다수의 삶이 무방비로 취약한 상황에 머문다는 건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개입이 필연적인 상황일 것이다. 이 영화는 명백히 그런 사회적 인식 개선과 여론 환기, 즉 '계몽'의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옆 손님과 붙은 시비에 위자료로 무마한 덕분에 빈털터리가 된 일행은 귤 수확으로 호구지책 삼아야 한다. 셋은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참 열심히 일한다. 작업이 끝나고 받은 일당 봉투를 세어보며 만원 더 들었다고 당황해한다. 혹시 무슨 술책을 부리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곁들인 채 이들은 호의 섞인 설명을 듣고 나서야 안도한다. 그리고 그들끼리 속삭인다. '정산'이란 걸 처음 받아봤다고 말이다. 회사를 위해 체력의 극한까지 쥐어짜며 공연과 무대에 올라 돈을 벌어왔지만, 초기 투자분에 미치지 못했다며 단 한 번도 직접 수고의 대가를 받아본 적 없는 것이다. 사정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내용이지만, 화면에서 직접 확인하는 건 다른 차원이다.

귤 농장 담당자에게 셋은 서로 짠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실장님'이라 호칭을 붙인다. 막상 당사자는 자신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 영문을 알 수 없다. 그 역시 한참이 지나 셋에게 고백한다. '너희들 하는 말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 수학여행도 학창시절 평범한 추억도 공백인 채 가벼운 체조를 하면서도 발성과 성량 연습을 병행하고, 잠꼬대도 '할 수 있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이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걸까. 영화는 그렇게 찬찬히 이야기의 균형을 유지하며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던 K-POP 아이돌의 현실을 풀어낸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보편적 청소년 인권 이야기

▲ "힘을 낼 시간"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주)엣나인필름
계몽을 전제하되, 교과서적 공식에 갇히지 않고 대중영화의 장점을 구현한 <힘을 낼 시간>의 이야기는 물 흐르듯 유려하고, 인물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잘 형상화해낸다. 가십으로라도 널리 공인된, 하지만 실제 개선은 요원하기만 한 사회적 의제를 확장하기 위한 실용에 최적화된 구성인 셈이다.

세 주인공은 각자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각인시킨다. '수민'은 리더로서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끌어안은 채 해체된 그룹의 막내를 챙긴다. 그룹은 끝이 났어도 사람은 남는다. 여전히 복잡한 속내를 품고 아이돌 시절의 버릇은 고스란히 간직한 상태다. 섭식장애와 강박증을 끌어안고 강한 척하지만, 그런 자신의 집착이 이미 겪은 비극의 원인이 아닐까 속앓이한다. '태희'는 얼핏 보면 '망돌'답지 않게 천하태평이지만, 실제로 가장 곤란한 처지다. 이미 남들보다 한창 낙오된 상태인데 소속사 계약 탓에 뭘 새로 출발하지도 못하는 진퇴양난 신세다. 넉살 좋은 표정이지만, 그 역시 남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답답함을 감추지 못한다.

언니오빠인 수민과 태희가 전형적인 아이돌 출신의 애환을 구현한다면, 후배인 사랑은 대사와 설명보다는 표정과 이미지로 그들의 심리와 처지를 표상하는 캐릭터다. 수민과 공통의 상처를 공유하지만, 소녀에서 멈춘 듯 자기만의 요새에 스스로 가둔 채 내내 이어폰을 빼지 못하는 유예된 상태다.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감정에 몸을 맡기는 연기는 실제 많은 해당 출신들이 겪는 후유증을 실감하게 만든다.

여기에 외부자들이 개입한다. 이들에게 '어른'의 조언과 배려를 베푸는 어쩌면 그들 인생 첫 존재일지도 모를 '실장님'의 호의로 이들은 위기에 처했던 여행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들을 알아본 '소윤'은 처음엔 뜬금없이 일행 사이에 끼어들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왜 그가 등장한 것인지 명확히 관객에게 '존재의 이유'를 납득가게 해준다. '찐따' 과거를 고백하며 그들 노래가 힘이 되었다는 고백 덕에 무의미한 시간만은 아니란 공감을 얻는다. 소윤의 균형추 노릇 덕분에 일상 세계와 분리된 채 화려한 조명에 갇힌 또래 청소년들이 비로소 우리와 같은 사회의 일부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다사다난했던 그들만의 수학여행을 마무리한다. 물론 짧은 제주여행은 그들이 당면한 난제를 무엇 하나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않는다. 다만 셋에게 '힘을 낼 시간'이란 일단정지하고 숨 돌릴 틈을 부여했을 뿐이다. 물론 그 소중한 유예 덕분에 늘 수동적으로 타인에게 끌려다니던 각각의 '나'를 찾았으니 본전은 뽑고도 남은 셈이다. 영화를 끝까지 본 관객들의 응원은 덤이다.

<작품정보>

힘을 낼 시간
Time to Be Strong
2024|한국|드라마
2024.12.18. 개봉|99분|12세 관람가
감독 남궁선
출연 최성은, 현우석, 하서윤, 강채윤, 홍상표
제작 국가인권위원회, 비포 위 다이
배급 (주)엣나인필름

2024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한국경쟁 배우상(최성은), 한국경쟁 왓챠상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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