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의 크리스마스’‘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두 집단의 충돌을 그린다. 2차 세계대전 와중, 동남아 전선의 포로수용소를 관리하는 일본군과 영국군 포로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은 다른 문화와 관습을 지니고 있고, 때문에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양자 간의 소통 불가능성에서 온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의 한 장면.수용소 소장인 요노이 대위(사카모토 류이치)와 부하 하라 상사(기타노 다케시)는 제국주의 일본의 국가상을 대변하는 인물인데, 조선인 군무원에게 할복을 명령하며 즐겁다는 듯 이죽거리는 하라 상사의 모습에서부터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겨냥한다. 누군가 수용소에 몰래 금지 품목인 라디오를 반입한 일로 처형될 위기에 놓인 로렌스 중령(톰 콘티)은 정작 진범은 찾지 않으면서도 조직 전체의 질서를 위해 책임을 짊어질 희생양은 필요하다는 일본인의 도덕관에 납득할 수 없어 분개한다.
영국군 포로의 지휘관으로 완고한 성격의 소유자인 힉슬리 대령은 포로에 대한 처우를 제네바 협정에 따라 처리할 것을 요구하지만, 요노이는 그딴 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막무가내로 부상병과 환자까지 연병장에 끌고 나오라 명령하고 사망자까지 발생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화와 칼’에서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그들의 사회와 의식구조를, 열도를 넘어 바깥으로 확산시키고 세계를 일본적인 질서로 재편하고자 한 의도의 소산이었음을 지적한다. 흔히 입에 담는 말이지만 의외로 ‘상식’은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언어일 수 있다. 제국주의 일본이 초래한 비극의 근원에는 사무라이 문화의 관습으로 형성된 자신들의 ‘특수’를 ‘상식’인 양 억지를 부리고 타자에게 강요하는 폭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이편과 저편의 ‘상식’ 간에 놓인 괴리에 관한 영화이다. 세계의 보편성과 소통하지 못한 채 고립되어 그들만의 ‘상식’에 갇힌 일본의 패배는 당연한 귀결이었다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
급작스러운 비상계엄 선언에서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장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렸다.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인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이 땅에 다시금 독재 체제를 부활시키려 한 쿠데타의 주모자가 지지율이 어찌 되었든 정상적인 절차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내란을 정당화하고 탄핵받아 마땅한 대통령을 끝까지 감싼 여당의 퇴장과 85표의 반대는 실로 경악스러운 현실이었다.
비록 한국 정치가 양당 간의 정치적 내전 상태이긴 했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명제만큼은 모두가 동의하는 ‘상식’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전혀 다른 그들만의 ‘상식’을 드러내며 절대다수를 억압하려는 비상시국, 21세기를 사는 ‘시민’에게 1970~80년대 군사독재의 ‘신민’이 되길 강요하려 한 시대착오적 파국으로 접어들자, 국민은 분연히 일어났다.

이 점만은 분명하다. 오늘날 진영과 계층을 막론하고 작동하는 한국 사회의 ‘상식’은 근현대사의 질곡을 거쳐 일궈낸 민주주의이며, 그러한 보편의 바깥에 서고자 하는 대상은 결코 공존과 관용의 대상일 수 없다는 것 말이다.